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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성군은 한반도의 끝…끝은 또 다른 시작이며 출발지다
[2018 북·중 국경 투먼을 가다-3] 량수진 단교…여기가 한반도 최북단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1/10 [13:05]

1945년 퇴각하던 일본군이 폭파해 73년째 단교로 있는 온성대교의 2층 초소 아래서 북한 군인들이 해바라기 씨를 수확하고 있다.

도문시에서 량수진(凉水鎭)으로 가는 길은 두만강을 끼고 간다.

북한 쪽 강변에는 옥수수 밭이 이어지고 대부분 산간지대라 마을은 그리 보이지 않았다. 초소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고, 어떤 곳은 강 전체를 보려는지 산에 초소가 있었다. 수량이 많지 않은 두만강에는 중국과 북한 쪽 강변에 철조망이 끝없이 이어져 국경을 알렸다.

량수진에는 두만강 단교(斷橋)인 온성대교(穩城大橋)가 있다.

량수진 용호촌에서 동남쪽으로 2㎞쯤 떨어져 있는데 두만강 하류의 끝자락으로부터 5번째 놓인 다리다.

총길이 500m, 넓이 6m, 18개의 교각과 2개의 교대로 이뤄졌고, 교각의 경간 길이는 25m로 일제가 만주에서 약탈한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1937년 건설했다. 하지만 이 단교는 6.25와는 무관하고 일본 패망과 관련이 깊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한 후 소련군은 150만 명의 병력을 집결시켜 네 갈래로 진격하자 황망히 패퇴하던 일본군은 소련군의 기병과 탱크부대의 진격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8월 12일 새벽 5번째 교각에 폭약을 묻고 폭파해 버렸다. 이로 인해 온성대교는 무려 73년간이나 단교 상태로 있다.

량수진은 훈춘시에서 41㎞, 도문시에서 21㎞, 왕청현과는 45㎞킬로 떨어져 3개 현·시의 삼각교차점에 위치해 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과 마주하고 있어 한반도 최북단이다.

 

온성대교는 무려 73년간이나 단교 상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과 마주하고 있는 한반도 최북단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충북 옥천에 살던 80여 가구가 정착해

지금도 터를 일구며 살고 있다.

 

총면적은 371㎢이고 12개의 행정촌과 1개의 사회구역이 있다. 인구는 1만4000여명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6000여명 수준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충북 옥천에 살던 80여 가구가 정착해 지금도 터를 일구며 살고 있다. 1980년대 인구의 대부분이 조선족이었으나 하나 둘 등지면서 지금은 한족인구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량수진 룡호촌 부락을 지나 두만 강변 인근 주차장에서 제방을 오르는데 ‘조선 측에 향하여 촬영하거나 말을 건네거나 강에 쓰레기 던지는 것을 엄금한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국경에 다다랐음을 알렸다. 조금 더 가자 ‘물건을 던지지 말라’는 등 5가지 주의사항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다리로 가니 희미하지만 온성대교 표지석이 한문으로 적혔고, 오른쪽 준공일자는 소화(昭和) 12년 5월까지만 보였고 나머지는 판독이 불가능했다.

다리를 20여 발자국 정도 들어갔더니 옥수수 밭 아래 둔치에 경영촌 11㎞, 밀강하구 12㎞라는 도로표지판이 서 있었다. 굳이 표지판을 강에서 보게 만든 이유는 뭐고 그것도 예전에 만든 것이 아닌 최근 표지판이어서 의아했다. 마치 탈북자들에게 알리는 방향표시 같았다.

단교 중국 쪽 끝에는 ‘국외로 촬영 소리침 물건 버림을 엄금한다’는 현수막이 붙었다.

북한 쪽으로 보니 단교 끝에 하늘색 2층 초소 앞으로 북한병사 4명이 앉아서 작업을 했다. 뭔가 하고 카메라를 당겨보니 해바라기 씨를 수확하는 중이었다. 가끔 입에다 넣는 모습도 보였다.

두만강 북한 쪽에서는 그물을 치는가 하면 염소를 몰고 가는 주민이 보였고, 멀리 도로에선 선전용 봉고차 뒤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온성군은 중국 도문시와 두만강 사이에

맞대고 있어…인구는 13만 명, 1읍 10구

15리로 구성…회령과 온성군 가운데에

있던 종성군은 1974년 두 군에 흡수 돼

 

초소 뒤로 보이는 막사는 새로 지은 것인지 도구를 든 군인들이 왔다 갔다 부산하게 움직였고, 그 뒤로 논 밭 너머에는 빌딩과 영생탑이 있는 온성군이 보였다.

온성군은 함경북도 북부에 위치해 중국 도문시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맞대고 있다. 인구는 13만 명이고 1읍 10구 15리로 구성돼 있다. 군의 남쪽은 회령시, 동쪽은 새별군에 접하고 서·북은 두만강(豆滿江)을 국경으로 하여 중국 지린성과 마주하고 있다. 회령과 온성군의 가운데에 있던 종성은 1974년 두 군에 흡수됐다.

한반도의 최북단 군으로 남양면(南陽面) 풍서동(豊西洞)의 유원진(柔遠鎭)이 한국의 극북(極北)인 북위 43 °0’39″이 된다. 교통은 서부와 북부지역으로 함북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군 내에는 삼봉역, 종성역 등이 설치돼 있다.

남양과 삼봉에서 중국과 연결된 남양~도문철교가 있고, 도로교통은 신의주~우암 간 도로가 통과되며 종성, 남양, 동포 등과 연결돼 정기버스가 운행된다.

종성읍의 부성 한가운데에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수항루(受降樓)라는 3층 누각이 있다. 종성부사 이종일이 처음 세웠고, 고을 사람인 주수맹이 고쳐 세웠다. 우리나라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3층 누각인 수항루는 처음 지어질 적에는 뇌청각(雷天閣)이라고 했다.

1608년 침입해온 적을 무찌른 뒤 수항루라고 고쳤는데, 목탑과 비슷한 특징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1층은 정면 7칸에 측면 6칸이며, 2층은 정면 5칸에 측면 4칸, 3층은 정면 1칸에 측면 1칸이다.

온성군 왼쪽으로는 아주 멀리 왕재산(239m) 아래 조선로동당 1차 당대회 기념비가 보였다. 흰색의 기념관과 동조각상,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김일성이 온성군과 량수천자를 넘나들며 항일 투쟁을 했다고 만들어놓았다.

온성대교 옆으로 중국 쪽에는 형식적으로 치다 만 철조망이 덩그러니 놓여있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다리에 사람들이 몰리니 철조망은 그저 흉내만 낸 듯했다.

온성군은 대부분 한반도의 끝이라고 한다. 구태여 우리가 ‘끝’자를 붙일 필요는 없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어서 이곳이 출발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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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10 [13:05]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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