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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과 탈북민들 삶의 역사 카메라에 담는다
[인터뷰]허 철 원코리아미디컴 프로듀서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8/06/28 [16:09]

지난 5월 18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육군회관에서 통일신문 창립 2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히 거행되었다. 홍양호 통일신문회장, 박청수 원불교 원로 교무, 고경빈 남북하나재단이사장, 신미녀 새롭고하나된조국을위한모임 대표 등 내 외빈 2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 시작에서 눈에 띈 것은 장운영 통일신문사장이 1998년 5월 20일에 창간하여 20년간 꿋꿋하게 이끌어 온 본지의 일대기를 동영상으로 담은 기록물이었다. 감동과 회환이 없이 보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장면이었다.

영상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신문창간과 동시에 매해 꾸준히 진행해오는 ‘청소년 통일글짓기대회’이다. 판문점, 통일전망대, DMZ땅굴 등 생생한 안보현장에서 학생들이 분단의 북녘 땅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통일의 당위성과 통일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 것이다. 북한어린이 돕기 성금모금이 수년째 이어지는 것도 감동적이다.

이 영상물을 만든 주인공은 탈북민 출신의 허 철 프로듀서(PD)이다. 3만 탈북민 사회에 여러 영화감독, 영상물 제작자가 있지만 그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허 철 PD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63년 량강도 혜산 태생이다. 북한에서 제일 추운 지역이며 량강도청(인민위원회) 소재지인 혜산은 이웃나라 중국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인구 20만의 도시이다. 1979년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에 입대하여 10년 군사복무를 마치고 89년에 제대했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양강도무역회사 지도원으로 배치 받았다. 인민군 80~90%가 집단배치(당국이 강제적으로 하는 직업알선)이다. 개인의 의사와 능력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노동당의 명령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 이에 불응하면 그 누구든 ‘혁명의 반동’이 되어 감옥에 가야한다.

▶1990년대는 외화벌이가 대세인 때이다.

노동당에 헌납하는 외화벌이 목적으로 중국과 무역사업을 하였다. 동구권 사회주의가 붕괴한 1990년대 들어서며 북한당국은 외화보유에 혈안이 되었다. 당시 외화벌이 일군들은 대부분 보위부, 안전부 등이 뒤를 봐주기에 권세가 높았다. 일본의 중고차를 들여와 2~3배의 가격을 붙여 중국의 지방에 파는 장사를 하였다.

 

량강도 혜산 태생…79년 고등중학교졸업

군에 입대, 10년 복무 마치고 89년 제대

양강도 무역회사 지도원으로 배치 받아

 

▶북한당국의 허망성은 어떻게 알았나?

당국에서 발급한 무역허가증(도강증)을 받고 1년에 10회 이상 중국을 드나들며 자동차 밀매장사를 했으니 자연히 세상실정에 눈을 떴다. 내가 당에서 받았던 ‘썩어빠진 남조선 실태 ’가 전부 가짜라는 것을 안 순간 허탈함을 금할 수 없었다.

당과 수령에게 충성했던 10년의 군사복무, 국가에 헌신했던 사회생활 등이 너무도 허망했음을 느꼈다. 오로지 수령 한 사람을 위해 노예처럼 충성하며 살았던 나 자신이 미웠다. 아무리 봐도 북한에는 미래가 없어 보였고 더욱이 살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으니 아내를 데리고 두만강을 건넜다. 1997년 2월이었다.

▶탈북 후 중국에서의 생활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간 곳은 연길이었다. 조선족이 많이 사는 지역이기에 그 쪽을 선택했으며 그곳에서 아내와 함께 과수원 일을 2년간 하였다. 이후 신변안전이 불안하여 청도로 이주하여 한국식품회사에 취직하여 3년간 일을 했다. 그래도 탈북자의 신분은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도 매서운 중국공안의 검거가 심해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후 몽골을 거쳐 2002년 대한민국에 왔다.

 

당국에서 발급한 무역허가증(도강증) 받고

1년 10회 이상 중국 드나들며 자동차밀매

장사하면서 자연히 세상실정에 눈을 뜨고

당과 수령에 충성했던 군사복무와 국가에

헌신했던 사회생활 등에 허망함을 느껴

 

아내 데리고 두만강 건너…중국 연길정착

과수원 일을 하는데 신변안전이 불안하여

청도로 이주 한국식품회사에 3년간 일해

여기서도 매서운 중국공안 검거가 심해

몽골 거쳐 2002년 대한민국으로 입국

 

▶사회에 배출되어 무슨 일을 시작하였나?

탈북민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와서 배정받은 주거지는 경남 부산이었다.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무슨 일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북한에서 배운 것도 없고 권력기관의 보호 아래 했던 ‘밀수업’은 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한류가 최 절정기에 올랐던 시기이며 미디어산업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어릴 때부터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남달리 유별했고 영화(영상촬영) 부문에 호기심이 많았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불혹의 나이 40세라는 때에 대학공부를 한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 대신 영상촬영기술을 배워 미디어제작자가 되고 싶었다. 하여 부산에 있는 모 영상전문학원에서 1년간 머리를 싸매고 영상촬영, 편집기술, 구성연출 등 전문지식 공부를 하였다. 부산KBS, 울산KBS, MBC부산지국 등에서 3년간 인턴직원으로 일을 하였으며 이후 ‘하나영상’ 이라는 영상제작업체를 설립하였다. 지난 1990년대 말에 중국, 일본, 동남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한류의 기본 구성체는 대한민국의 대중연예인들이 외국의 현지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파급력이 대단한 미디어(영상) 매체이다. 세계 속의 ‘한류’는 오늘날 중국 동북3성을 지나 북한의 접경지역에도 흘러 들어가고 있다. 38선 위로 퍼지면 더 가까운 거리이지만 중국을 에돌아 거꾸로 북한에 퍼지는 현상이 생겼다. 북한에서 당국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드라마나 음악 등을 몰래 접했다는 사례가 적지 않다.

폐쇄사회 북한에서 직간접적으로 ‘한류’를 접했던 탈북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아! 썩어빠진 남조선이 바로 한국이구나. 정말 잘 사는 나라이네” “그런데 당국에서는 어찌하여 남조선의 실태를 바로 알려는 주민들을 강하게 통제할까?” 하는 정도의 인식에서 끝난 것이다. 분명 통일을 위해서 북한주민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북한당국의 거짓선전대로 남한이 나쁘지 않고 좋다는 것을 꾸준히 알려줘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 폐쇄공간에 갇힌 북한주민들의 영혼을 깨우치는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어둠이 깃든 캄캄한 세상이라고 해도 어느 작은 틈이라도 있기 마련이며 그 곳을 유일한 희망 창구로 이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순간은 쉽게 그리고 자주 오지 않는다. 그 순간을 만들며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탈북민 사회에는 사명감을 갖고 북한주민들의 인권회복과 독재정권 규탄을 위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 영화감독, 영상물제작자 등 미디어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있으며 그들이 만든 영화와 영상물도 제법 있다. 물론 소재는 북한이고 시청자는 남한 국민에게 맞춰져있다.

▶그동안 어떤 작품들을 만들었는가?

2005년 9월 다큐 ‘뿌리’(부산 시네마테크영화제 출품작당선, 각본·감독·촬영), 2007년 11월 단편영화 ‘리즈헌트’(촬영감독), 2007년 12월 단편시나리오 ‘파편’(드라마, 시나리오 영상작가 교육원 창작상), 2014년 7월 KBS 남북의 창 ‘광복70주년 특선집’, 2015년 10월 상록수영화제 단편 ‘착한정착’ 입상 등이 있다.

2007년 문화관광부 공채시험을 봐서 프로듀서로 임명되어 문화관광부 홍보PD로 2년간 일을 했다. 주로 했던 일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관, 고궁, 국가유적지 등에 대한 홍보영상물 제작이었다.

 

서울 문화관광부 공채시험에 합격

프로듀서로 임명되어 문화관광부

홍보PD로 2년간 국립중앙박물관

고궁, 국가유적지 홍보영상물 제작

 

▶영상기록자로 자부심이 있겠다.

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영상도 하나의 기록수단이다. 요즘 세태에 사람들은 책보다는 영상을 더 많이 접한다. 지하철 안을 보면 90% 이상 고객이 스마트폰에 열중한다. 우리 탈북민들은 사명감으로 일을 해야 역사에 떳떳하다고 본다. 후대를 위해서라도 탈북과 정착, 통일운동의 역사는 반드시 기록해놓아야 한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어떻게 보았나?

당시 지방출장과 밀렸던 일이 많고 바빠서 싱가포르에서 타전 된 북미정상회담 뉴스는 꼼꼼히 보지 못했다. 허지만 며칠 뒤 북한당국에서 만들어 상영한 ‘조미수뇌상봉’(북미정상회담) 다큐멘터리를 유튜브에서 유심히 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김정은 위원장이 주인공으로 부각된 내용이다. 북한주민들에게는 김정은이 ‘절세의 애국자’ ‘미국 대통령도 정중하게 맞아 준 위대한 수령’으로 각인 되었다. 북한사회 특성상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준다면…

문제는 북한과 미국 양 정상의 진정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일이든 미국의회 비준을 받아야만 한다. 그 속에서 국회의원들이 미국의 이익과 동맹국의 안보, 시대적 배경 등을 잣대로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그는 어떤 일이든 자기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뒤집을 수 있다.

▶북미정상회담 성과로 보는 분야는…

우선 70여 년간 두문불출 하던 역사상 가장 폐쇄사회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국제무대로 이끌어 냈다는 것은 최고성과이다. 그렇게 국제사회 일원이 되어 세계와 함께 하는 평화장정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 대단하다. 허나 앞으로 애로는 분명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독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식이든 미국과의 정치적 충돌은 다양하게 일어 날 것이다. 다만 트럼프 시대는 조용할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훈련 중단을 시사했다.

개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다소 이해가 어렵다. 한미훈련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자국(미국)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허나 엄밀히 말해 한미훈련으로 한국방위도 되겠지만 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감 상승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한반도 전쟁으로 인해 생기는 미국의 불이익은 한미훈련에 드는 비용보다 수백 배에 이를 것이다. 한미동맹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는데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목적도 더 크다.

▶김정은 시대 북한TV가 크게 달라졌다.

북한당국이 남한의 종편TV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종편에 자주 출연하는 탈북민들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분명하다. 남한에서 지난 2011년 종편TV가 생기면서 기존 있던 지상파방송도 치열한 경쟁시대에 돌입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북한TV에서 딱딱한 이미지의 아나운서가 사라졌다는 것이 큰 변화다. 그리고 영상화면도 기존의 낡은 방식에서 새롭고 세련된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눈에 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정치선전물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다큐멘터리(기록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의 변화도 없다. 이번 김정은 싱가포르 방문 영상물도 북한TV에서는 하루 평균 3회 이상 방영되었다. 이런 방식은 수십 년 동안 그대로다.

북한이 3대 체제로 내려오면서 여러 가지 경제·문화적 방면에서는 다소 혹은 크게 변했지만 주민들에 대한 사상통제, 학습강연, 정치행사 등은 전혀 변함이 없다. 주민통제에서 TV매체만큼 위력한 것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TV에서 딱딱한 이미지의 아나운서

사라졌다는 것이 큰 변화…영상화면도

세련된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 보여줘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탈북민들 카메라에 담는 때가 가장 행복

사진기자는 한 컷의 멋진 사진 찍기 위해

무려 수십, 수백 번이나 카메라 셔터 눌러

명장면은 진흙에서 보석 찾기만큼 힘들어

 

▶김정은이 진정 변할 것이라고 보는지…

쉽지 않을 것이다. 3대로 세습 받은 독재자로서의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조상들과 달리 경제적인 변화는 다소 있을 듯하다.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혹은 김정은만의 특별한 방식(개성공단방식)으로든 경제적 개혁개방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럴수록 주민들에 대한 사상통제는 더욱 강화 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독재생명과도 맞바꿀 만큼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일하면서 행복한 때는 언제인가?

남북하나재단에서 발행하는 잡지 ‘동포사랑’의 사진촬영을 전담하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탈북민들을 카메라에 담는 때가 가장 행복하다. 사진기자는 한 컷의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무려 수십, 수백 번이나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명장면을 찾기가 진흙에서 보석 찾기만큼 힘들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아름답고 멋진 얼굴을 들여다보며 “누가 뭐라도 이들이 분명 통일되면 고향인 북녘 땅을 개건하는데 선구자가 될 귀중한 인재들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매일 매일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풀린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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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8 [16:09]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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