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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실체를 밝힌다] 아미산 총국산하 사슴목장
춥고 물이 맑은 곳에 살던 사슴의 약효/좋다고 확신…해발 높은 곳에 목장 조성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09/07 [14:35]

<김형수 객원기자>

북한에는 만주꽃사슴과 붉은사슴, 말사슴, 우수리사슴이 서식하고 있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먹을 것이 없었던 주민들의 무분별한 사냥으로 야생사슴은 거의 멸종상태에 이르렀다. 사슴은 물론 이젠 노루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이다.

 

말사슴, 천연기념물 지정…보약재로 이용

 

야생에서 번식하는 사슴들은 모두 멸종상태이지만 김일성 일가와 노동당 비서국, 정치국 간부들을 위해 아미산총국 산하에 수십 개의 사슴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미산총국 산하 사슴목장들은 주로 꽃사슴과 말사슴을 사육했다.

북한주민들 속에서 꽃사슴으로 불렸던 삼지연 사슴은 한국에서 우수리사슴이다. 시베리아 우수리지방에 많이 서식하고 있어 우수리사슴으로 부르는데 북한에서는 삼지연사슴이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돼 있다.

삼지연 사슴은 몸길이가 0.9m에서 1.6m 정도이며 몸에 하얀 반점이 꽃처럼 널려있다고 하여 북한의 주민들은 꽃사슴으로 불렀다. 삼지연사슴의 수컷은 암컷보다 몸집이 약간 큰데 몸무게는 보통 80㎏, 최고 130㎏에 이르고 있다.

이외 삼지연군 포태종합농장을 비롯해 아미산총국 산하 일부 목장들에서 사육하는 말사슴은 몸길이가 2m에 가깝고 몸무게는 최고 200kg까지 나가는 종류이다. 말사슴은 북한의 천연기념물 제354호이다.

사슴의 뿔은 녹용으로 불리는 귀한 약재이지만 고기 역시 다른 산짐승들에 비해 지방이 적고 누린내가 나지 않아 예로부터 보약재로 이용돼 왔다. 이씨조선시대 한국의 전라남도 진도군과 완도군에서 임금에게 올릴 사슴들을 사육했다고 한다.

생전에 만수무강을 꿈꿔 온 김일성도 일찍이 사슴 사육에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에겐 일체 사슴을 사냥하지 못하도록 엄금했다.

개인은 죽은 사슴을 발견해도 절대로 손을 댈 수 없고 지역 당 조직에 보고를 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만들었다.

북한에서 개인은 사슴을 사육할 수 없고 사냥할 수도 없다. 만약 덫에 걸리거나 사냥개에 물려서 잡힌 사슴이 있으면 중앙에 보고를 하고 지시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북한의 사슴은 모두 김일성 일가의 재산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산에서 발견한 녹용을 당에 보고하지 않고 몰래 팔아먹었다가 5년간의 징역형을 산 사람들도 있었다. 북한은 사슴뿐 아니라 산삼도 개인들이 몰래 채취하면 불법으로 간주하고 법적인 제재를 가했다.

 

새끼 밴 사슴 시도 때도 없이 잡도록 지시

 

1980년대 초까지 주로 사향노루, 반달곰, 백두산호랑이와 사슴, 노루 등을 사냥했다. 또 주요 명절이 아니더라도 북한은 김일성 일가의 보약재로 사향노루와 야생곰, 새끼를 밴 사슴과 노루는 시도 때도 없이 잡도록 지시를 내리곤 하였다.

그런데 사냥총을 지급받은 사냥꾼들이 자신들의 몫으로 몰래 사슴이나 야생곰, 사향노루를 잡아들여 나중엔 양강도 백암군에 간신히 남아있던 사향노루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북한에서 사냥은 국가가 지정해준 사람들만 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해마다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이나 노동당 창건일과 같은 주요 명절이 있을 때에만 어떤 종류로 몇 마리를 잡으라는 지시를 받고 사냥총을 지급받았다. 물론 사냥이 끝나면 사냥총은 다시 지방 안전부(보안성) 병기과에 바쳐야 했다.

양강도는 1988년 여름 태풍으로 많은 나무들이 쓰러졌다. 이때 태풍에 쓰러진 통나무들을 중국에 수출했는데 통나무 1천입방을 주고 6톤적재 중국 동방호 자동차를 수입해 들였다.

이후 ‘고난의 행군’이 닥쳐오자 북한은 통나무를 중국에 팔아 쌀을 사들였다. 그래서 북한의 산림은 황폐화되었다.

‘고난의 행군’은 인간에게만 닥친 불행이 아니었다. 산림이 초토화되면서 야생동물들은 삶의 보금자리를 빼앗겼다.

당장 생명을 유지하기에 바빴던 주민들이 당의 지시를 따를 리 없었다. 어린 아이들까지 옹노를 놓아 산토끼며 꿩을 잡아들였고 어른들은 그물을 가지고 참새와 박쥐까지 잡아먹었다.

사슴과 노루, 곰은 사냥돼 밀수꾼들에 의해 중국으로 몰래 팔려나갔다. 백암일대는 사향노루와 수달을 잡기 위해 밀렵꾼들이 몰려들었다. 북한에서 키우던 해리서(뉴트리아)는 주민들이 모두 훔쳐 중국에 팔아먹어 결국 목장이 폐쇄되기도 했다.

검은돈과 여우, 너구리의 가죽이 무더기로 중국에 팔려 나갔고 협동농장의 소, 양, 닭마저 개인들이 몰래 잡아먹거나 중국으로 팔아버렸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협동농장의 소를 몰래 중국에 팔았다가 공개처형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소도둑도 총살하던 시절에 아미산총국 산하에 양강도 삼지연군 녹수리 꽃사슴목장은 주민들의 필사적인 도둑질로 결국 폐쇄되고 말았다. ‘고난의 행군’의 참혹함은 무장경비를 서던 녹수리 꽃사슴목장이 폐쇄된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김일성 일가와 특권층들을 위해 양강도 삼지연군 포태리와 녹수리, 풍서군 석우리, 삼수군 상거리와 함경북도 청진시 마전동, 함경남도 정평군 동천리, 장연군과 강원도 세포군 삼방리에 꽃사슴과 말사슴 목장들을 가지고 있었다.

 

함북청진 청암구역에 첫 사슴목장 생겨

 

북한에서 처음 생긴 사슴목장은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에 있는 마전사슴목장이다.

1955년에 김일성은 이곳 룡제가금목장에 사슴분조를 내오도록 했는데 이 사슴분조가 점차 확대되어 사슴작업반으로, 1967년에는 사슴목장으로 독립했다.

1960년대에는 양강도 삼지연군 보서노동자구에 속해있던 녹수평 등판에 녹수리꽃사슴목장을 건설했다.

빨치산 활동시기 김일성은 민간요법을 많이 익혔는데 추운 지방에서 자란 사슴의 고기가 맛도 좋고 약효도 높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녹용이나 녹태도 춥고 물이 맑은 곳에서 살던 사슴의 약효가 더 좋다는 김일성의 확신 때문에 북한은 해발고가 높은 곳에 사슴목장을 많이 만들었다. 이렇게 키운 사슴의 뿔과 녹태(사슴의 태반), 고기는 노동당 간부들과 빨치산 동료들에게 제공했다.

삼지연군에 사는 주민의 사냥개가 야생 사슴의 왼쪽 뒷다리를 물어뜯어 산채로 잡는 일이 벌어졌다.

크게 상처를 입은 사슴이 잡혔다는 보고를 받은 삼지연 군당은 양강도당을 거쳐 노동당 중앙위에까지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고의적인 사냥이 아닌데다 상처가 난 사슴이여서 중앙에서 삼지연 군당 간부들에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삼지연군 간부들이 살아있는 사슴의 피를 받아먹으려고 수십 명이나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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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07 [14:35]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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