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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은 정신적 장애인…고통 이겨내는데 적정한 노동이 도움”
[인터뷰] 북한이탈주민장애인협회 서유정 대표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08/09 [16:13]

분단 70여년의 오랜 세월만큼이나 변함없는 것이 북한의 1인 독재 정치이며 노동당정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북한사람들이다. 얼굴의 모습이나 옷차림이 달라진 것은 생활의 일상이며 예나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것은 사람들의 정신과 사상이다. 전민 통제의 그 사상은 국가가 관리감독하기에 변하지 않는다.

북한주민들의 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부터 정부의 강제적인 사상교육을 받으며 성장함을 알 수 있다. 7살 때 유치원에서 배우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 외부세계(주로 미국과 남한)에 대한 증오심 등 왜곡된 정보는 평생토록 갖고 사는 국가관, 사회관이 되어 존재하는 북한의 실정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지몽매한 북한주민들은 종신토록 수령충성 병에 감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령에 대한 비판을 가장 엄중시하는 최고의 범죄로 취급하는데 보통 종신수감 내지 사형이다. 어쩌면 70여년 독재정권 유지도 수령 비판자에 대한 무자비한 처벌제도가 있기에 가능하다.

사실 북한정권을 탈출하면서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사람은 3만 탈북민 중에 거의 없을 것이다. 계속되는 수령 동상 건립과 무모한 핵개발에 드는 비용으로 나날이 피폐화된 경제수준, 굶주리는 생활환경이 탈북민들로 하여금 목숨을 담보로 하는 대한민국 행을 가속시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중국에서 공안에 체포되고 수차례 북송되어 수용소생활 경험이 있는 탈북민일수록 북한정권에 대한 분노가 더욱 크다. 목전에서 죽은 가족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소름이 끼치며 평생을 갖고 가야할 ‘중병’인지도 모른다.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북한이탈주민장애인협회’를 찾아 서유정 대표를 만났다.

 

▶고향이 어디인가?

1973년 1월, 북한 동해안지역의 일부인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났다. 요업(도자기제조)이 유명한 고장이다. 아버지는 남한 충청도 태생의 국군포로 출신으로 경성생기령광산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형제는 4녀 1남 중 막내딸이었다.

▶학력과 경력을 소개해 달라.

1989년 경성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경성피복공장에 배치 받았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직업배치를 전부 국가에서 강제적으로 한다. 여기서 2년간 일을 하고 청진교원대학 교양원학과에 입학하여 1994년 8월에 졸업했다. 이후 생기령광산 유치원 교양원으로 임명받아 5년간 어린이보육을 열심히 하였다.

 

탈북민들은 고향에 남겨진 가족 때문에

죄책감으로 살아…‘정신적 장애인’으로

애써 숨기지 말라고 그들 위로하고 있어

 

솔직한 말로 남한에 온 탈북민들은 고향에 남겨진 가족 때문에 죄책감으로 사는데 어쩌면 정신적 장애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고통을 이겨내는데 적정한 노동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정신장애인’임을 애써 숨기지 말라고 한다. 그것도 하나의 고통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유치원생들의 일과를 소개해준다면...

림 작가도 평양에서 유치원시절을 보낸 탈북민이니 잘 알겠지만, 정말이지 북한 유치원은 세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유치한 교육’을 시킨다. 그것이 바로 김일성·김정일 우상화교육이다. 어린이인 7살 때부터 수령 김일성·김정일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해괴망측한 교육을 강제로 시킨다. 북한 아이들은 제 부모 생일과 고향은 몰라도 김일성·김정일의 생일과 고향은 자다가 깨워 물어봐도 알 정도이다.

 

청진교원대학 교양원학과에 입학하여

1994년 8월…이후 생기령광산 유치원

교양원으로 임명받아 5년간 어린이보육

 

아이들 한 주에 2일, 2시간 유치원에서

깨끗하게 꾸려진 ‘혁명교양실’ 들어가

담임선생님의 ‘수령위대성강연’ 들어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아이들은 한 주에 2일, 2시간 동안 유치원에서 가장 깨끗하게 꾸려진 ‘혁명교양실’에 들어가 담임선생님의 ‘수령위대성강연’을 듣는다. 필요에 따라 영상물시청, 사진보기 등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어린이들이 수령의 사상을 본받아 모범적으로 살겠다는 일종의 ‘충성맹세’를 다지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시기 유치원 실태는 어땠나?

내가 교양원 생활을 시작한 그 해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쌀밥과 배춧국, 염장생선, 단무지 등이 나왔다. 그러나 이듬해(1995년)부터 밥이 나오지 않았고 멀건 시래깃국만 배급되었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도시락을 싸갖고 나오도록 가정통지문을 보냈다. 이때 보이지 않는 빈부격차가 심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어느 정도로 실망했나?

한 개 반 20명 중에 도시락 싸오는 아동은 대략 반 정도 된다. 그러면 그걸 가운데 놓고 못 싸온 애들도 빙 둘러 앉아 나누어 먹는다. 아이에게 밥 싸줘서 보낸 부모들은 항의한다. “왜? 우리 아이 밥을 다른 아이와 나눠 먹어야 하냐?” 하는데 정말이지 그때만큼은 “이 직업 정말 신물이 난다. 내가 왜 이런 모욕적인 참사를 겪어야 하나?” 했다. 그럴수록 당국에 대한 원망과 비판만 마음속에 가득했다.

 

한 개 반 20명 중에서 도시락 싸오는

아동은 대략 반 정도…못 싸온 애들과

나눠 먹는데 밥 싸줘서 보낸 부모들

‘왜 나눠 먹냐’항의 비판이 탈북계기

 

▶그것이 탈북 결심으로 이어졌나?

그렇다고도 볼 수 있다. 청진교원대학 시절에 동급 친구 중에 귀국자가족이 있었다. 가끔 그의 집에 놀려 가면 그 친구는 일본과 남한에 대한 경제발전 상황을 자랑삼아 얘기하곤 하였다.

일본에는 차가 많아서 사람들이 그 차 위를 걸어 다녀야 할 정도다, 남조선도 빠르게 일본을 따라오고 있다는 내용 등이다.

▶부친에게서 남한소리는 못 들었나?

아버지는 1929년생이다. 한국전쟁(1950년~1953년) 당시 강원도 백마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가 되었다.

정전이후 함경남도 검덕광산에 배치를 받았고 1963년 이후 무산광산, 생기령광산으로 이동했다. 남한출신 사람들을 갈라놓기 위한 당국의 술책이었다. 아버지는 북한당국의 감시를 늘 의식하며 살았기에 우릴 보고 절대 말조심하라고 늘 당부하셨다. 남한에 대한 소리는 고향의 그리움 정도만 얘기했다.

▶탈북경로를 말해 달라.

1998년 여름, 지인이 중국을 자주 드나들며 장사를 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남조선에 친척이 있으면 찾을 수 있고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남조선은 중국보다 더 잘사는 나라이다”는 말을 했다.

아버지는 2년 전에 심장판막증으로 사망했고 유언으로 꼭 남한에 가서 고향 선산에 묻힌 조상들에게 술을 부으라고 했었다.

 

형제들과 어머니가 1998년 10월 중순에

중국서 남한친척에 편지…2개월 뒤 입국

2001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에 입학

2006년 졸업…사회복지사 자격증취득

 

▶결심을 하기까지 어렵지 않았나?

이왕 탈북할거면 “혁명의 길에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김일성충성 구호대로 해야겠다고 가족이 합의를 보았다. 하여 형제들과 어머니가 1998년 10월 중순 경 눈물의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서 남한의 친척에게 편지를 보냈고 3일 만에 답장, 6일 만에 고모들과 사촌오빠들이 왔다. 이후 연길과 심양 등을 거쳐 2개월 뒤 대한민국 땅에 안전하게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남한 생활은 어떻게 시작했나?

북한에서 교원대학을 졸업했기에 지인으로부터 대학원에 가라는 권고를 받고 고민했다. 전혀 다른 사회에 왔기에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강해 2001년 숙명여자대학교 아동복지학과에 입학하였다.

북한에서 복지학은 선전용으로 존재하고 남한에서는 실제 사용을 위해 있다는 것을 체험했으며 2006년에 졸업했다. 대학시절에 사회복지사 자격증,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07년 발족…어머니가 청각장애

탈북민과 장애인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물질적 및 정신적으로 지원

경제자립 및 자활의식을 키워주는

교육과 안정적 일자리 제공이 기본

 

▶북한이탈주민장애인협회는 어떤 단체인가?

통일부 등록 비영리민간단체인 북한이탈주민장애인협회는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온 탈북민과 장애인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물질적 및 정신적으로 지원하며 탈북민들의 단합과 친목을 도모하는 단체이다. 탈북민들에게 경제자립 및 자활의식을 키워주는 교육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을 기본으로 한다.

▶언제 만들어졌나?

단체가 만들어진지는 10년 전 즈음이다. 3년 전 내가 한 번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욕으로 대표를 맡았다. 이유가 있다. 나의 어머니가 청각장애인이다. 온종일 집에만 있는 어머니를 보며 “저러다가 어떤 병이라도 나면 큰일인데.

무슨 할 일이 없을까? 돈벌이가 아닌 재미와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탈북어르신들이 대부분 저럴 것이라고 느껴졌고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탈북어르신들에게 강조하는 말은.

솔직한 말로 남한에 온 탈북민들은 고향에 남겨진 가족 때문에 죄책감으로 사는데 어쩌면 정신적 장애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고통을 이겨내는데 적정한 노동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정신장애인’임을 애써 숨기지 말라고 한다. 그것도 하나의 고통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장애인들과 쇼핑백 만드는 작업

남북하나재단 자활사업단체로 선정

탈북학생 장학금 수여도 계획 중

 

▶남과 북의 장애인이 어떻게 다른가?

북한에도 장애인이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가 일쑤이다. 남한에서는 장애인이 누군가로부터 신체비하 발언을 들었다면 국가인권위원회에 고소라도 하지만 북한에는 그런 기관 자체가 없다.

북한에 비하면 남한은 장애인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도,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시설에는 물론 관공서, 회사 등에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너무나 잘 갖추어져 있다.

▶지금까지 해온 일과 계획을 소개해준다면...

지난 3월 서울 거여동 소재 장애인 생활시설인 ‘임마누엘집’을 방문하여 장애인들과 함께 쇼핑백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7월에는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의 제2호 자활사업단체로 우리 단체가 선정이 되어 현지에서 개소식을 열었다. 올 하반기 기초생활대상 탈북 학생 장학금 수여도 계획 중에 있다.

▶존경하는 탈북선배는 누구인가?

사단법인 평화통일탈북인연합회 김태범 대표이다. 평양태생의 러시아벌목공 출신으로 지난 1994년에 입국한 탈북 대선배이다. 이제 겨우 초년생인 나의 시민단체 활동을 성실히 지도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자신이 오랜 시간 터득한 사회활동 경험과 조언을 나에게 아낌없이 준다. 친오빠 같고 이웃집아저씨 같은 소탈한 분이다. 자신의 건강은 아랑곳 않고 남을 돕는데서 언제나 모범인 참 멋진 사람이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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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09 [16:13]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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