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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실체를 밝힌다] 조선민족보험총회사와 서동명(上)
국제사회 보험금 타내려다 미수에 그치기도/대북지원물자 화재사고 의심을 사기에 충분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7/07/13 [13:53]

<김형수 객원기자>

서동명은 김일성과 함께 했던 빨치산 출신 서철의 아들이다. 북한에서 봉건적 세습은 단순히 김씨 일가의 독점물이 아니다. 북한의 고위간부들도 자식들에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권력과 재부를 대를 이어 물려주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에서 김씨 일가는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핵심계층 ‘백두산 줄기’와 ‘낙동강 줄기’

 

이들을 가리켜 북한에서 핵심계층이라고 하는데 핵심계층은 흔히 ‘백두산 줄기’와 ‘낙동강 줄기’로 나뉘어졌다. ‘백두산 줄기’는 김일성과 같은 빨치산 출신의 자녀들이고 ‘낙동강 줄기’는 6.25 전쟁 때 공을 세운 인민군의 자녀들이다. 이 중에서 북한 정권을 떠받드는 기본 핵심은 빨치산 출신 자녀들로 구성된 ‘백두산 줄기’이다. 빨치산 출신인 서철의 아들 서동명도 북한에서 가장 핵심계층인 ‘백두산 줄기’에 속해, 태어나면서부터 부귀영화를 타고 난 복덩이였다.

1980년대에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김정일은 북한사회의 모든 사업을 진두에서 지휘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제에 밝지 못한 김정일은 국가발전의 근간이 되는 기간산업이나 기초투자에 매우 인색했다. 대신 남들의 눈에 뜨일 수 있는 규모가 큰 건설이나 국가적인 대회들, 외국의 손님들을 청해 돈을 탕진하며 몸값을 올리는 데만 골몰했다. 여기다 자력갱생까지 외치다 보니 외부와 단절된 북한의 경제는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할 빨치산 원로들도 나이가 들어가며 자식들에게 권력과 재부를 물려주기에 바빴다. 1980년대 노동당 검열위원장을 지냈던 서철 역시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아들 서동명을 출세시키기에 바빴다.

서동명은 아버지의 힘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했는데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면서 서동명은 김정일의 비자금을 전담하는 중앙당 38호실 향산지도국 당비서, 조선민족보험총회사 총사장으로 도약했다.

그는 향산지도국의 독점적 수출권을 활용해 국내외에서 많은 달러를 벌어 들였는데 그 공로로 노력영웅칭호를 수여 받았다. 2009년에는 최고인민회의 12기 대의원으로 2010년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평양시 중구역 해방산동에 위치한 대외보험총국은 2005년까지 국제사회에 조선국제보험회사라고 알려졌다가 이후 지금까지 조선민족보험총회사로 불리고 있다. 회사의 주 업무는 국제보험시장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이었다.

북한은 대외인터넷 선전매체인 ‘조선의 오늘’에서 ‘조선민족보험총회사는 1947년에 창립돼 70년의 업무역사를 가지고 있는 보험기관’이라고 소개하면서 ‘외국투자기업들의 투자대상에 각종 보험봉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외국 투자자들의 국제보험문제 처리

 

조선민족보험총회사의 보험봉사는 북한에 투자한 외국의 기업들에 화재보험, 가스사고배상책임보험, 자동차 3자 배상책임보험, 건설 3자 배상책임보험과 함께 외국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여러 가지 국제보험문제들을 처리하고 있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여 년 사이 조선민족보험총회사는 북한의 수해와 가뭄, 헬리콥터 추락사고와 여객선 침몰사고, 열차 충돌사고 등을 이유로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보험사들로부터 2억8천만 달러 규모의 보험금을 받아냈다.

2008년 한 해 동안에 유럽에 있는 국제보험회사를 상대로 불법적으로 청구해 받아낸 보험금만 4,200만 달러 정도에 달했다. 이 과정에 남포시에 보관하고 있던 국제사회의 대북지원물자 화재사고는 국제사회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또 1990년대 초 양강도 운흥군에서 파철덩어리로 전락한 일건제련소를 폭파시키고 국제사회의 보험금을 타내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도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하여 조선민족보험총회사는 항상 국제사회의 감시명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욱이 조선민족보험총회사가 사기로 받아 낸 보험금이 김정일 정권에서 핵과 미사일개발에 악용된다는 의문이 꼬리를 물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불러왔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2005년부터 조선민족보험총회사에 강력한 제재를 실시했다.

유럽연합(EU) 이사회는 2014년 10월 2일에 열린 집행위원회의에서 북한정부가 도이칠란드의 함부르크에 유한회사 형태로 설립한 조선민족보험총회사와 서동명 총사장을 비롯한 관련자 6명의 자금을 동결하고 회사의 추방을 결정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외화벌이가 시원치 못하자 2014년부터 서동명은 조선민족보험총회사 총사장직을 내려놓았다. 2016년 9월 김정은 정권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조선민족보험총회사’ 런던지사까지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

서동명은 조선민족보험총회사 총사장직을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중앙당 후보위원과 대의원이라는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서동명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노동당 중앙위 38호실과 39호실은 김씨 일가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다.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김일성까지 사망한 1995년 북한은 대외 원조와 자금줄이 모두 끊겼다. 경제난이 덮치고 ‘고난의 행군’으로 경제가 붕괴되면서 국가행정이 마비되었다. 수백만의 주민들이 굶주림으로 처참하게 죽어나갔다. 이런 시기에 외화상점과 외화식당을 운영하는 향산지도국에 배치된 사람들을 북한에서 ‘황금직업’을 얻었다고 부러워했다. 향산지도국은 일본과 중국, 대만, 홍콩 등 외국에서 전자제품과 소비품들을 사들여 되거리(되넘기)로 팔았다.

 

손가락 안에 꼽을 재산가로 불리기도

 

주로 텔레비전과 냉장고, 녹음기를 비롯한 전자제품과 가죽으로 된 옷, 담배로부터 식료품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구매 고객은 주로 외화를 뇌물로 받으면서도 외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었던 고위직 간부들과 그들의 자녀들이었다. 평양에 만도 향산지도국은 네거리상점, 통일거리상점, 평천상점 등 9개의 외화상점을 운영하고 5개의 외화식당과 릉라빵공장, 합성가죽 가공품공장 등을 포함해 각 도 소재지들에도 외화식당과 외화상점을 운영하면서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런 조직에서 최고권한인 당 비서의 자리를 차지한 서동명은 북한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재산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 일가에 빌붙어야 살 수 있는 북한에서 서동명의 운명은 1995년 향산지도국의 해산으로 낙엽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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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13 [13:53]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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