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2017.11.24 [10:09]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정치  경제  군사/외교  사회/NGO  탈북민  인터뷰  통일교육  오피니언  북한풍물기  생활/문화
오피니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북한 엿보기] 찬송가 소리
“한명이라도 교인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5/01/12 [15:33]

북한의 헌법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조선불교도연맹·조선그리스도교 연맹·조선천도교중앙지도위원회 등의 단체가 있고, 종교시설도 있다. 평양에는 봉수교회·칠골교회·제일교회가 존재하며 목사 30명을 포함하여 교직자 300명, 그리고 기독교 신자는 1만 3,000여명이 있다. 여기에 목사·부목사·전도사·장로·권사·집사·성가대·부인전도회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1990년대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
 
불교의 경우 묘향산의 보현사를 비롯하여 평양 대성산의 광법사·금강산의 표훈사 등 60여개가 있다. 스님은 300여명 정도로 모두 결혼을 한 기혼자로서 대처승으로 머리를 기른다. 이 스님들은 사찰근무 중 양복 위에 승복을 착용한다. 신도는 1만여 명 정도이다.
북한에 이처럼 종교시설이 있지만 종교를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북한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에서 종교는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으로서 어떤 형태의 종교이든 인간의 의식이 환상적으로 왜곡 반영된 ‘허위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북한의 종교계에도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일고 있다. 북한에서 출간된 ‘조선말대사전’1992년 판에서는 종교에 대해 이르기를 “사회적 인간의 지향과 염원을 환상적으로 반영하여 신성시하며 받들어 모시는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 또는 그 믿음을 설교하는 교리에 기초하고 있는 세계관, ‘신’이나 ‘하느님’과 같은 거룩한 존재를 믿고 따르며 그에 의지해 살아갈 때에만 온갖 소원이 성취될 뿐 아니라 내세에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비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종교를 부정하던 행태에서 일부를 인정한 획기적인 사변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 원시종교로부터 시작하여 불교·기독교·회교 등 수많은 종교와 크고 작은 유파들이 있다고 규정하므로 써 종교를 우회적으로 설명하는 상황이다.
북한은 1998년의 개정헌법에서는 ‘반종교선전의 자유’대목을 삭제하였다. 이유는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종교활동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이며 남한과 관계에서는 남측 종교단체와의 교류 필요성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북한과 중국, 이란 등 11개국을 심각한 종교자유 침해국가로 지목했다.
남측의 지원으로 북한 종교시설에 대한 복원사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내부적 차원에서도 제한된 종교 활동이 북한체제를 위협하기 보다는 오히려 체제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남북한 종교 교류, 종교계 판도 바꿔
 
특히 남북한 종교 교류는 북한의 종교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북한의 종교인 협의회 위원장이 “남측이 이끌어 주어 북한 종교계가 국가적 행사의 주관 역량을 보유하였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남북한 종교 교류가 남측 비용 부담으로 진행되어 북한교류 주체들의 대내 입지와 대남인식이 제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일반주민들의 종교 활동이 보편화되어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남측에서 지원하는 종교시설의 복원과 지원은 북한을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인식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남북 종교교류는 종교관현 교재 지원·운영 후원금 지원·시설 건립과 전통 종교시설 복원·종교관련 문화시설 조사·종교기념일 공동행사 등의 형태로 추진된다.
개신교 분야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는 북한의 개신교 성직자 양성기관인 평양신학원의 신축교사 건립을 지원하여 2003년 강의실·친교실·교수실·도서실 등을 갖춘 642평방 규모의 2층짜리 새 교사를 건립했다.
이어 남한 및 해외의 교직자나 단체들은 교재와 신학원 운영에 필요한 후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는 2005년 북측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평양 청류동 동평양 극장 앞 대동강변에 연건평 200평 규모의 2층 건물로 평양제일교회를 건립했다.
불교계에서는 대한불교 조계종과 조선불교도 연맹이 신계사 복원을 추진해 2007년 완공하였다. 또한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는 2003년부터 북한 조국평화통일불교협의회와 공동으로 평양 인근의 법운암을 비롯해 59개 사찰에서 전통무늬나 그림과 함께 색을 입히는 ‘단청불사’를 하였다.
남북 사회문화교류 분야에서 종교교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종교단체의 교류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단체 간의 입장 차이에 따라 갈등의 여지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5년 10월21일 한국교회 백주년기념관에서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인 서경석은 북한의 봉수교회를 ‘가짜교회’라고 규탄하였다.
이에 북한의 한 종교지도자는 “한명이라도 교인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반론한 적도 있다. 단 한명의 진정한 교인이 있다면 종교가 없다고 어찌 부정하겠냐는 것이다.
 
문 자주 두들기면 문은 반드시 열린다
 
북한에서 종교를 부정하고 믿던 말던 간에 종교적 교류를 확대해 나간다면 북한당국과 주민들이 종교교리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들이 흥얼흥얼 부르는 노래가 찬송가로 이어질 것이다. 사상과 이념을 앞세운다면 이미 이룩한 종교적 교류도 무산되고 남북관계는 또다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물론 북한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까지 교류를 이어갈 수는 없지만 우리의 선의의 행동이 언젠가는 주민들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기 때문에 종교적 교류를 통해 정치적 교류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종교인이라면 3대를 멸족시키던 북한당국도 변하고 있다. 김정일이 2002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여 러시아 정교회 건설을 약속한 후 2003년 러시아 정교회의 북한 내 활동이 허용되고, 2006년 8월13일 평양에 첫 러시아 정교회 교회당인 ‘정백사원(성삼위일체성당)이 개원됐다는 점이다.
이는 김정일이 종교의 활동을 북한 내에서 승인한 것보다는 세계적인 종교탄압국의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의도에서 라고 볼 수 있다.
즉 세계적인 압박이 북한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무리 강하게 반대하는 북한의 종교론에도 문을 자주 두들기면 문은 반드시 열리고 마음을 하나로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교류로 시작해서 큰 교류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통일의 지름길을 마련할 수 있는 대안이 생길 수 있다.
곽명일 객원기자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5/01/12 [15:33]  최종편집: ⓒ 통일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회원약관 개인보호정책 회사소개 한국통일교육학회 기사제보 보도자료
(140-806)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5-3 남영빌딩 201호
(주)통일신문(TEL:02-701-8347 FAX:02-701-8345)
Copyright ⓒ 2007 unityinfo.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