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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나 선거에서 ‘과반수이상 찬성/지지’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잘못이다. 과반수의 ‘과(過)’ 자가 넘다/초과하다는 뜻이기에, 과반수라는 말 자체가 절반을 넘는다는 의미다. ‘과반수이상’이란 말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뜨거운 열기’나 “열기가 뜨겁다”라는 말도 어색하다. 열기의 ‘열(熱)’ 자가 뜨겁다는 뜻이므로, 열기가 뜨거운 기운을 가리킨다. “뜨거운 기운이 뜨겁다”라는 게 말이 되는가? “열기가 고조된다”라거나 “열기로 가득하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운 열정’이란 말도 비슷하다. 열정이란 말이 뜨거운 정, 열렬한 애정, 열중하는 마음 등을 가리키는데 열정에 ‘뜨거운’이란 수식어가 왜 필요한가. 뜨거운 얼음이 없듯 차가운 열기나 차가운 열정도 없으니 ‘뜨거운’이란 말은 필요 없다.
낙엽은 떨어진 나뭇잎... 낙엽이 아니라 나뭇잎이 떨어진다고 하는 게 좋다
기차를 타는데 내릴 때쯤 방송으로 나오는 승무원의 인사말이 거슬린다. 대개 다음과 같다. “곧 마지막 종착역인 용산역에 도착합니다. 오늘도 저희 철도/기차를 이용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가시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 종착역(終着驛)은 기차가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역’인데 “마지막 종착역”이라면 종착역이 몇 군데 더 있단 말인가. 목적지(目的地)는 ‘목적으로 삼아 가는 곳’이기에 ‘가시고자 하는 목적지’ 역시 뜻이 겹친다. 종착역 앞의 ‘마지막’도 필요 없고, 목적지 앞의 ‘가시고자 하는’도 필요하지 않다.
“오늘도 저희 철도/기차를 이용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가시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말엔 한자어 의미 중복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도 있다. 말이든 글이든 길어지면 주어와 술어/동사가 어긋나기 쉬운데 여기서도 그렇다. 앞부분의 ‘감사드리며’ 주체는 철도청이나 그 관계자들이고, 뒷부분의 ‘가십시오’ 주체는 고객이기 때문이다. 위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고객이 감사하며 가라는 뜻이 된다. 뒷부분의 ‘가십시오’를 ‘가시기 바랍니다’로 고치면 주어와 술어가 일치된다. 물론 말을 짧게 하면 괜찮다. “오늘도 저희 철도/기차를 이용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식으로.
지인(知人)은 ‘아는 사람’인데 ‘아는 지인’이라고 말한다. 측근(側近)은 ‘가까운 사람’을 가리키는데 ‘가까운 측근’이라고 하고. 여생(餘生)은 ‘남은 인생’을 뜻하는데 ‘남은여생’이라고 말한다. 시체(屍體)는 ‘죽은 사람의 몸’인데 ‘죽은 시체’라고 하고. 여건(與件)은 ‘주어진 조건’인데 ‘주어진 여건’이라 말한다. 과욕(過慾)은 ‘지나친 욕심’을 가리키는데 ‘지나친 과욕’이라고 하고.
전망(展望)은 ‘멀리 바라봄’ 또는 ‘앞날을 헤아려 내다봄’이란 뜻인데, ‘앞으로의 전망’이란 말도 뜻이 겹쳐
공간(空間)은 ‘빈 곳’이고 공터(空터)는 ‘비어있는 땅’인데, ‘빈 공간’이나 ‘빈 공터’라는 말도 자주 쓰거나 들을 것이다.
시각(視角)은 ‘사물을 보거나 관찰하는 자세’이고 관점(觀點)은 ‘사물이나 현상을 보거나 관찰하며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이다. ‘시(視)’ 자나 ‘관(觀)’ 자는 보거나 관찰하는 것을 가리킨다. “보는 시각이 다르다”거나 “보는 관점에 따라” 등의 말을 자주 듣는데, ‘보는’이란 말을 왜 덧붙일까.
비슷하게 전망(展望)은 ‘멀리 바라봄’ 또는 ‘앞날을 헤아려 내다봄’이란 뜻인데, ‘앞으로의 전망’이란 말도 뜻이 겹친다. 예상(豫想)은 ‘어떤 일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고, 예비(豫備)는 ‘미리 준비하거나 마련하는 것’인데, 흔히 “미리 예상하다”거나 “미리 예비하다”라고 쓰기 쉽다.
공감(共感)하다, 공유(共有)하다, 공존(共存)하다, 공생(共生)하다 등에서 ‘공(共)’ 자는 ‘같이/함께’의 뜻이다. 남과 같이 느끼고, 공동으로 가지며, 함께 존재하고, 더불어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단어들 앞에 ‘같이’나 ‘함께’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동거(同居)하다, 동참(同參)하다, 동행(同行)하다 등에서 ‘동(同’ 자 역시 ‘같이/함께’의 뜻이다. 같이 살고, 함께 참가하고, 같이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같이 동거한다’거나 ‘함께 참가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바람직한가.
‘매시간 마다’ ‘매일 아침마다’, ‘매주 일요일마다’, ‘매월 25일마다’ 등의 말도 뜻이 겹친다. ‘매(每)’ 자가 ‘마다’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매시간, 매일, 매주, 매월 등의 뒤엔 ‘마다’를 덧붙일 필요 없다.
“낙엽이 떨어지다”는 말은 훨씬 많이 듣는데 이 역시 잘못됐다. 그 유명한 시인 김소월이 ‘부모’라는 제목으로 어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로 시작하는 시를 썼을까? 낙엽의 ‘낙(落)’ 자는 떨어지다는 뜻이기에 낙엽은 떨어진 나뭇잎이다. 낙엽이 떨어진다면 떨어진 잎이 또 떨어진단 말인가? 낙엽이 뒹군다, 구른다, 날린다, 쌓인다 등은 좋다. 떨어진다는 말을 쓰고 싶으면 낙엽이 아니라 나뭇잎이 떨어진다고 하는 게 좋고. 아무튼 김소월의 시가 유행가로 만들어져 많은 가수가 부르는 바람에 이른바 국민 애창곡이 돼버린 게 유감스럽다. “낙석이 떨어지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낙석(落石)‘은 떨어진 돌을 가리키니까.
언젠가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사회자가 "자리에 착석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한자어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인지, 참 한심한 노릇이다. 착석의 ‘석(席)’ 자가 자리/좌석을 가리키므로, ‘착석’이 자리에 앉는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자리에 앉아주십시오”라고 쉽게 말하든지 한자어를 쓰고 싶으면 그냥 “착석해주십시오”라고 하는 게 좋다.
요즘 음식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어 ‘잔반 남기지 말기 운동’이 벌어지는 게 반갑다. 식당에 가면 “잔반을 남기지 마세요”라는 글귀를 보게 된다. 그런데 잔반의 ‘잔(殘)’ 자가 남은 것을 뜻하고, ‘반(飯)’ 자가 밥을 의미하므로, ‘잔반’이 남은 밥을 가리킨다. 쉽게 “밥이나 음식을 남기지 말자”라고 하면 좋은데, 뜻도 제대로 모르는 한자어로 유식한 체하려다 탈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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