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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청년'은 가장 많이 소비되는 정치 언어가 되었다. 청년 일자리, 청년 주거, 청년 창업, 청년정치까지 정치권은 끊임없이 청년을 말한다. 그러나 청년들의 삶은 달라졌는가. 취업은 더 어려워졌고, 주거는 더 불안해졌다. 결혼과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포기의 문제가 되었다. 청년은 정치의 전면에 서 있지만 국가운영의 중심에는 여전히 서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청년정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에는 청년정책은 있지만 청년국가는 없다. 청년정책은 특정 세대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청년국가는 국가를 운영하는 철학이다. 경제는 청년의 일자리를 만들고, 교육은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며, 과학기술은 미래 산업을 이끈다.
평화는 청년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기반이며, 저출생과 연금, 주택과 지역소멸은 앞으로 청년세대가 살아갈 대한민국의 모습을 결정한다. 결국 국가의 거의 모든 정책은 청년의 삶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청년은 하나의 정책 대상이 아니라 국가운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는 청년을 미래의 동반자가 아니라 정치적 자원으로 소비한다. 선거철마다 청년위원회를 만들고 청년 인재를 영입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청년은 다시 주변으로 밀려난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청년을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고, 아군을 정면에 세우는 식의 보여주기 식 정치는 청년을 정책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의 장식품으로 만든다. 청년에게 기회를 주는 정치가 아니라 청년이라는 이름을 소비하는 정치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청년기구나 정책, 일시적 혜택이 아니다. 더 많은 '청년'이라는 이름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역량과 공공성을 갖춘 청년이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다.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 대한민국의 미래를 살아갈 세대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청년정치다. 그래야 이제까지 실효성 논란이 있었던 혹은 실패했던 청년정책, 정치를 회복, 만회할 수 있다. 당사자들이 자신들 정서와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은 산업화를 이루며 경제성장을 만들어냈고, 민주화를 통해 자유와 권리를 확대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이 마주한 시대는 과거와 다르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와 우주산업, 기후위기와 저출생, 평화와 국제질서의 재편은 국가 운영의 기준 자체를 바꾸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정치와 국가 운영 방식은 여전히 과거의 성공 경험과 진영 논리에 머물러 있다. 시대는 미래로 향하는데 진영을 막론하고 정치권은 과거를 붙잡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권교체도, 사람만 바꾸는 세대교체도 아니다. 국가 운영 철학의 세대교체다. 산업화 시대의 성장전략과 민주화시대의 성과를 넘어, 미래세대를 국가 운영의 중심에 두는 새로운 국가 비전이 필요하다. 청년국가는 청년에게 특혜를 주는 나라가 아니다. 미래세대를 국가 운영의 기준으로 삼는 나라이며, 청년을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공동 설계자로 인정하는 나라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새로운 청년 수식어를 지닌 일시적 조직, 정책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청년을 바라보는 국가의 철학이 바뀔 때 비로소 미래도 바뀐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청년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철학이다. 그것이 바로 '청년국가'다. 국가의 초점을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로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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