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된 북한선수...이미지 고착화 속 새로운 남북관계 패러다임을 묻다[기획] 축구단 방한 후일담/ 그라운드의 ‘두 국가’… 내고향여자축구단이 남긴 것
남북 간 접촉왕래, 교류협력이 단절된 가운데 이루어진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방한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리유일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선수단 39명은 2025~20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일정을 위해 지난 5월 17일 입국해 7박 8일간 대한민국에 체류했다. 이들은 5월 20일 준결승에서 수원FC 위민을 2 대 1로 꺾었다. 이어 23일 결승에서 일본 도쿄 베르디 니레자스를 1 대 0으로 제압하며 최종 우승을 차지한 후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이번 이벤트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한 이후 처음으로 열렸다는 점과, 역사상 최초의 남북 클럽대항전이라는 점에서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외신들은 적대 관계 속에서도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점을 비중 있게 다뤘다.
국내 언론과 탈북민 유튜브 채널 등도 이번 방한을 앞 다투어 다루며 관심이 매우 컸다. 종합적으로 이번 북한 여자축구선수단의 방한은 남북관계 단절 속에 스포츠 교류의 시작을 알렸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이념의 벽에 가로막힌 북한의 닫힌 사회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한 '차가운 조우'로 기록되었다.
▉ 김정일 시대 '스포츠 외교' vs 김정은 시대 '스포츠 격리’
김정일 시대는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운 감성적·정치적 스포츠 외교의 시대였다. 반면 현재의 김정은 시대는 "적대적 두 국가론" 아래 국가 이익과 체제 관리에 집중하는 실리적 스포츠 외교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북한 팀의 방한은 대규모 응원단이나 정치적 이벤트를 하지 않고 우리 사회와의 정서적 접촉도 극도로 제한했다.
이는 김정은 시대 특유의 "실리형 스포츠 참가"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국제대회 참가를 통해 경기력 유지, 국제스포츠무대 복귀, 국가이미지 관리 등 실질적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남북화해 분위기 조성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북한이 이렇게 된 것은 2019년(문재인 정부)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부터다. 2018년까지만 해도 북한은 김정일 시대 화해 이벤트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기대했던 제재 완화를 얻지 못하자, 이후 남북관계는 급격히 냉각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자, 북한은 국경을 사실상 전면 봉쇄했다. 국제대회 참가와 남북체육교류도 대부분 중단되었다.
결정적 변화는 2023년(윤석열 정부) 12월말 나타났다. 김정은은 남북관계를 "하나의 민족 내부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이후 북한은 공동입장, 단일팀 구성, 민족 화해 이벤트와 같은 상징적 행사를 사실상 폐기했다.
▉ 북한의 폐쇄성과 대한민국 사회의 무기력
이번 북한 여자축구 선수단의 방한에서 가장 큰 논란은 경기장이 아니라 기자회견장에서 발생했다.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 감독은 한국 기자가 "북측"이라고 하자, 갑작스럽게 반발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라고 요구한 뒤 기자회견을 중단하고 퇴장했다.
놀라운 태도지만, 일견 이러한 행동은 북한체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등을 통해 외부정보와 문화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으며, 해외에 나온 선수단과 간부들 역시 귀국 후 사상 검사를 받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대응이다.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다. 그런데도 국내 기자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북측" 명칭을 썼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 삼아 기자회견이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정작 우리 사회는 으레 그런 것처럼 넘어갔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북한 독재정권의 집권자 김정은 체제가 문제다. 그들이 지령을 내려서 북한선수단을 로봇처럼 만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정부의 기준이나 원칙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정부의 지나친 ‘북한 눈치 보기’와 무대응은 국민적 굴욕감을 자아내며 집권 정부로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상호 주의적으로 조치했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은 자국 내에서 우리측 방북자에게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적용하는데,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자국 영토 안에서조차 스스로의 법과 원칙을 분명하게 내세우지 못 하는가 의문이 남는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대북 확성기 중단 등 선제적 긴장 완화 조치와 '평화적 두 국가' 관점의 신뢰 회복을 추진해 왔다. 대북관계에서 유연하게 긴장 완화를 추진해온 것으로 긍정 평가할 수 있다.
이번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방한의 경우, 국제 스포츠 규범에 따라 원칙적으로 수용하고 정치성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등 나름의 관리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북한 김정은은 고민하다가 뒤늦게 북한선수단의 방한을 허용한 배경에는 두 가지 포인트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현 형세를 유리하게 보고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과거 사례(2014년 인천AG, 2018년 평창올림픽)를 보면, 북한은 고립을 탈피하고 정세전환의 돌파구가 필요할 때 방한 카드를 활용해 왔다. 이번 역시 남쪽을 돌아 북미, 북일 관계회담 협상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북한이 지도에서 독도를 지웠다는 최근 뉴스가 대일 유화적인 제스처인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국제무대에서의 북한의 실리외교다. 현재 북한은 미중갈등으로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 중국은 대미견제용 북한카드를 필요로 한다. 트럼프의 압력을 받는 시진핑은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고 최근 북러 밀착을 견제할 목적으로 북한을 회유하고 있다. 김정은은 그 틈에 중국으로부터 경제·식량·에너지 지원을 챙기려는 실리외교를 펼치고 있다.
▉ 우리 정부의 무대응과 향후 바람직한 대북·외교 방향
우리정부는 북한 김정은 정권과 비교했을 때 노련미가 덜하다. 그동안 남북관계를 주도해온 우리나라로서는 선뜻 수긍하기 어렵지만, 지금 정부가 과거 포토폴리오를 승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원인이다.
정부는 이념 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코리아 패싱'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능동적 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북한에 끌려 다니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동북아 내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회복해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부작위가 외교며 대책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필요하면 우리나라의 입장을 미국이나 이해관계국에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실리를 추구하고 뒤처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상호주의와 인권, 대북정책의 새로운 이정표 필요
이번 북한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의 방한 여운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졌다. 경기장을 찾은 우리 국민이 목격한 것은 폐쇄적인 통제 속에서 자유로운 말과 미소조차 허용되지 않는 북한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오직 승리만을 위해 뛰는 그들을 보며 우리 국민은 같은 민족으로서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들이 처한 ‘인권의 사각지대’를 절실히 체감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앞으로 북한 주민을 향해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를 명확히 가리킨다. 정부는 북한 주민 역시 우리와 동일하게 기본적 인권을 누려야 할 존엄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대북정책의 근간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북한의 감독과 선수, 지원 인원이 보여준 장외행태는 안타까움을 넘어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 사람과의 철저한 분리를 요구하는 무리한 태도, 6·25 동족상잔의 전쟁을 상장하는 인공기를 과격하게 흔드는 도발적 세리머니, 북한정권의 호칭을 문제 삼으며 기자회견장을 무시하고 고압적으로 퇴장하는 무례함은 과거의 ‘퍼주기 외교’와 ‘남남갈등’의 악몽을 다시금 소환했다.
결과적으로 북한 팀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축하와 연대의 환호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경기만 치르고 떠나는 북한선수단을 보며 일각에서는 “상금 때문에 온 것이냐”는 냉소적인 말마저 흘러나왔다.
남북이 서로를 딴 나라 보듯 백안시하고 국민에게 상처만 남기는 교류라면, 앞으로 이런 방한과 방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젊은 층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고착화할 뿐이다.
당장 예정된 남북교류행사는 없더라도, 향후 국제무대에서 북한과 만날 기회는 언제든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원칙 없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외교관과 공무원은 물론, 일반 국민과 민간단체가 북한 정권 및 주민과 접촉할 때 적용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배포해야 한다. 북한을 호칭하는 법부터 그들을 상대하는 구체적인 행동지침까지,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필요하다. 정부 단독으로 하지 말고 국민여론수렴은 물론 국회 여야합의 등 초당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남북 간 국력과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한반도의 형세가 결코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다. 그럼에도, 왜 정부가 북한 앞에만 서면 저자세로 일관해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지 대다수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 당장 통일이 아닌 ‘평화적 공존’을 목표로 둔 현 정부 하에서 월등한 국력을 가진 대한민국이 아쉬울 것은 전혀 없다.
이제 대북관계의 패러다임을 현실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고,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대북정책을 펴나가야 할 때다. 무조건적인 양보의 시대는 끝났다.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고, 정당하지 않은 요구에는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스스로 ‘2국가 관계’를 천명했다면, 우리 역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친인척이 아닌 ‘남’으로서 대해주면 된다. 대한민국으로부터 남처럼 냉정하고 엄격하게 대우받을 때 비로소 북한 당국도 현실을 체감하고 쇄국이든 개혁개방이든 변화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한다면, 현 북한 당국의 무례한 장단을 맞춰 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국격이자 원칙이다.
내고향무역회사= 국가보위성의 외화벌이 기업으로 출발해 현재는 담배, 주류, 식료품, 체육용품 등을 생산한다. 원래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깊은 기업이다. 2012년 설립 당시 중국으로부터 기자재와 기술을 대거 도입하며 중국 의존도가 높은 형태로 출범했다. 중국 거점을 활용하는 기업으로 최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WCL) 출전을 위해 한국 방문 때도 중국 베이징을 거치는 등 대외 이동 및 무역 활동 시 중국을 주요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응원단=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등 남북교류협력 단체들이 참여한 '2026 AFC-AWCL 여자축구 공동 응원단'이다. 단장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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