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화약고에 다시 불이 붙었다

황흥룡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6/03/09 [15:21]

중동의 화약고에 다시 불이 붙었다

황흥룡 칼럼니스트 | 입력 : 2026/03/09 [15:21]

국제정치에서 중동은 끊임없이 불안정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가자지구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중동까지 불타고 있다. 대만문제도 여전히 살아 있다.

 

황흥룡 통일교육진흥연구원 원장    

전쟁 및 이와 유사한 내란, 폭동, 쿠데타, 혁명, 시위 등 대규모 변란은 목숨을 위협하고 공포를 동반한다. 생명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는 다른 수많은 요구의 순위가 떨어진다. 식량부족, 기근, 기아와 질병도 목숨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목숨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장기화된 고통을 부과한다. 기아와 질병이 전쟁 등 변란의 결과이기도 하고, 이것 때문에 변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정치나 민주주의는 그 다음의 문제인 것으로 오해한다. 그렇지 않다. 전쟁 등 변란이 민주주의의 부재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고, 기아와 질병 역시 민주주의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인간세상의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전쟁과 기아를 막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수조건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눈앞에서 전개되는 전쟁과 갈등이 민주주의의 결핍 때문 아닌가.

 

현대국가는 어떤 형태로든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그 철학적 기반으로 국민주권을 선언한 후 그 방법으로 삼권분립을 채택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대리인 민주주의로 위축되고, 국민주권은 종종 투표일에 대리인을 위하여 투표하는 권한으로 축소되고 있다. 삼권분립은 더욱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모든 국가에서 권력분립의 방식으로 삼권분립이나 그와 유사한 견제와 균형의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21세기 전 세계에서 삼권분립을 제대로 이행하는 나라가 과연 몇이나, 될까? 더구나 삼권분립이 권력 있는 사람들의 자기들끼리의 권력배분인 경우가 많고, 정작 주권자인 국민은 배제되어 있다. 국민주권의 관점에서 권력분립이 시행되려면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에게 책임지는 방식이어야 하는데 어떤 나라가 그러한 제도를 가지고 있을까?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는 그 수단이다. 직접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로 국민투표제, 국민청원제,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는 국가는 매우 적다. 우리의 경우 국민투표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국민청원제는 있으되 유명무실하다. 국민소환제는 지방자치에만 적용되고, 국민발언제는 제도 자체가 없다.

 

그러므로 정부, 국회, 법원, 정당이 일을 잘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국민들의 참여를 위한 통로가 잘 개방되어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국민들의 참여가 제한되거나 왜곡되면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그 사례가 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으 교과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전쟁의 화신, 악의축으로 비난받는 지경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현대민주주의의 흐름에서 돌연변이로 등장한 대통령제의 문제점 때문이다. 대통렁제는 대통령 1인에게 임기 동안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매우 전근대적인 권력구조이다. 사실상 과거 왕조시대의 왕과 비슷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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