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고향 떠나 헤어진 사람들 만나게 돕는 것에 자부심 느껴요”[인터뷰] 탈북민가족찾기 ‘고향집대마루’ 한안나 대표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온 주민들, 현재 3만 4천여 명의 탈북민이 한국에 있다. 중국과 해외서 떠도는 탈북자까지 포함하면 수십 만 명이다. 지난 2000년부터 한동안 매해 1천여 명씩 한국에 입국하기도 했다. 배고픔의 해결과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온 탈북민들은 고향의 부모형제와 친척을 두고 왔으니 자연스럽게 탈북이산가족이 되었다. 그 서러움은 말로 다 표현을 못한다. 한안나 ‘고향집대마루’ 대표를 만났다.
- ‘고향집대마루’ 단체가 궁금하다. 지난 2018년 서울에서 생긴 온라인(카카오톡)으로 한국과 해외에 있는 탈북민들의 헤어진 가족, 부모형제, 친척지인을 찾아주는 탈북이산가족 찾아주기 모임이다. 3만 탈북민 사회에 유일하게 이산가족을 찾아주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친목단체이기도 하다. 임시사무실은 서울 관악구에 있으며 꾸준하게 관련 활동 중이다. - 단체 설립 계기가 있었나. 남한에 들어온 탈북민 90%는 북한을 나와 중국에서 살거나 경유하여 3국을 통해 서울로 온다. 우연히 탈북민 A씨의 가족 찾기 사연을 친목모임 단톡방에 올렸더니 효과가 있었다. 중국에서 살 때 주변의 누구와 비슷하다는 제보가 왔다. 그래서 이때 가족 찾기 전문으로 하는 단체 카톡방을 개설하고 이 일을 전격 시작했다. - 이색적이고 규모도 커 보인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지난 2011년 즈음 서울에서 수년간 요란하게 불었던 탈남(한국을 떠나 외국에 난민형식으로 이주하는 것) 바람이었다. 이때 영국, 독일, 미국, 캐나다 등으로 약 2~3천명의 탈북민들이 불법적인 ‘난민이주’를 떠났다. 그들도 분명 헤어진 가족과 친인척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2018년 서울에서 온라인으로 한국과 해외에 있는 탈북민들의 헤어진 가족, 부모형제, 친척 만나게 해 주고 있어 3만 탈북민 사회에 유일하게 이산가족 찾아주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친목단체
- 탈북민의 아픈 마음은. 말로 다 표현이 안 될 정도이다. 해외에 합법(이민, 유학, 연수 등) 및 불법으로 체류하는 탈북민은 약 1천명으로 추정한다. 고향 잃은 것도 아픔인데 세계 각지에 뿔뿔이 헤어져 사는 운명이다. 꼭 만나지는 못해도 서로 카톡방에서 생사를 확인하고 안부를 전하고 소통하는 것도 탈북민들에게는 크게 감사한 일이다. - 단체 회원은 현재 몇 명 정도인가. 7년 전 20명으로 친목모임서 출발한 단체카톡방 회원은 현재 500여명이다. 전국에 분포된 다양한 직업의 탈북민들이다. 중국 내 탈북자들은 중국위쳇(카톡)으로 접속, 소통한다. 일본, 미국, 영국 등 세계 각국에 있는 탈북자들도 제법 회원으로 되어있다. 지금껏 60여 가족을 찾아줬다. 열심히 따라준 회원들에게 감사한 일이다. - 특이한 사례가 있었다면. 한국에 먼저 입국한 어느 탈북어머니가 혹시 딸이 탈북하지 않았을까 하는 예감으로 사연을 방에 올렸다. 과거 중국에서 살았던 탈북민 B씨가 중국 주소까지 알려주며 유사한 탈북여성을 봤다고 했다. 이후 서로 카톡으로 사진까지 교환하였고 딸임을 확인했다. 어머니는 바로 중국으로 가서 딸을 만났고 후에 한국으로 데려왔다.
7년 전 20명으로 친목모임서 출발해 회원은 현재 500여명...전국에 분포된 다양한 직업의 탈북민들로 일본, 미국, 영국 등 세계 각국에 있는 탈북자들도 회원으로 있어...현재 60여 가족 찾아줘
- 가족 아닌 지인 찾은 일도 있었나.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가족 친척이 없는 탈북자들도 많다. 그럴 경우에는 어린 시절 혹은 성년시기 동무와 친구들을 찾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민끼리 서로 찾은 4촌 형제, 고모 조카, 학교동창, 직장동료 등도 있다. 혜산, 회령, 무산 등지에서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탈북 해 한국으로 왔다. - 일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낀 적은. 많다. 지방의 탈북민 D씨는 중국에서 헤어진 가족을 찾은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맛있는 식사 한 번 사드시라며 20만원을 보내주더라. 감사히 받고 우리단체 공동회비로 사용했다. 또 다른 회원은 내가 수고한다며 계절마다 농산물을 보내주기도 하는데 받아서 독거어르신들에게 나눠 드리기도 한다.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 고향이 어디인가. 함경도에서 태어났고 사회생활 중 2000년 겨울 밀수(골동품, 사금장사 등)를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 1주일 후 베이징으로 가면 일자리가 많다는 정보를 접하고 브로커와 함께 그곳으로 가던 중 도중에 내렸다. 신분증을 만들어야 안전하다며 브로커와 함께 심심산골에 들어갔다. 인신매매에 걸린 것이다. - 어떤 고생을 하였는가. 나를 돈 주고 사간 집의 어르신은 과거 여성단체장으로 활동했다. 아주 교양적이고 인성이 좋은 분이었고 그의 노력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은신생활을 했다. 이후 베이징으로 거처를 옮겨 숙박업관리운영, 무역회사 통역사 등을 했다. 돈도 벌었으니 한국은 관광객으로 수차례 드나들었고 2013년 10월 자수했다. - 정착생활 초기를 말해 달라. 대부분의 ‘희망탈북민’과 나 같은 소수의 ‘자수탈북민’은 다르다. 주민등록증은 받지만 정착금과 주거지 배정은 없었다.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한국은 자격증이 우선이라는 정보를 알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사회복지사, 다문화사회전문가, 요양보호사, 사법통역사 등 10여 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어느 멋지고 훌륭한 후원자가 나타나서 우리단체사무실 공간을 마련해줬으면 참으로 감사하겠다. 서울 혹은 주변이라도 20평대 규모의 사무실이 있으면 우리에게는 정말 감지덕지다. 명절 때 고향도 못가는 탈북민들이 모여 이북음식을 해먹으며 오순도순 수다도 떨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고향은 죽어도 가고 싶은 어머니 품이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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