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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의 날’ 문화행사장에서 눈길을 끄는 합창단이 있었다. 중년의 탈북여성들과 남한여성들이 함께하는 ‘남북어울림합창단’이다. 탈북민관련 행사장에서 종종 모습을 보이는 실력있는 예술단이다. 이번 행사참여 공연단체는 통일부 남북하나재단에서 꼼꼼한 심사를 거쳐 지정했다. 서울시 하계동에서 ‘남북어울림합창단’ 박정월 총무와 마주 앉았다.
- 남북어울림합창단은 언제 생겼나. 2012년에 창단되었다. 합창단원은 40명, 그 중 절반은 남한사람이고 절반은 탈북민이다.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지휘자, 반주자가 그대로이고 단원들의 평균 나이가 50대 중반으로 아주 활발하다. 현재 남북어울림합창단 임원인 박윤숙 전 국제사이버대학교 교수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자문위원으로 있을 때 아이디어를 냈다.
북한노래는 90%이상 수령과 노동당체제 선전하는 내용의 노래와 춤...10% 속하는 비정치적 생활내용 담긴 공연 무대 올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많이 알아야 할 것
- 주로 노원구에서 공연을 하는가. 아니다. 합창단 사무실과 연습장이 노원에 있을 뿐이지 공연은 전국 어디든 불러만 주면 다 간다. 해마다 서울 노원구서 진행하는 노원어울림합창제와 다문화합창제에 참여한다. 또한 노원구청에서 탈북민들을 위한 음악제로 만들어준 고향음악회도 참여한다. 이 지면을 빌어 서울 노원구청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 보통 공연무대에 어떤 종목을 올리나. 대부분 민속 전통적인 북한노래를 올린다. 북한노래는 90% 이상이 수령과 노동당체제 선전하는 내용의 노래와 춤들이다. 나머지 10%에 속하는 비정치적 생활적 내용이 담긴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을 많이 알아야 할 것이다. 좋든 싫든 북한주민들이 80년간 그 체제서 살았기에 분명 향수도 있다. - 기억에 남는 특별한 공연은 있었나. 남북어울림합창단은 지역과 지방의 어르신들을 위한 이동공연도 한다. 고향이 이북인 실향민 어르신들은 90세 전후이고, 그 2세들도 이제는 70세 안팎이다. 이북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한 많은 눈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과 똑같은 실향민인 탈북민들의 마음도 정말 아프다. 고향에 못가니 말이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북한 혜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삼지연사업소 운전수, 모친은 혜산편직공장 노동자였고 형제는 5남매 중 막내다. 부친은 1927년 전라도 태생으로 일제강점기에 징병으로 일본에 끌려갔다. 1959년부터 조총련의 재일동포 귀국(북송)사업이 시작되었고 1960년 제12차 귀국선에 1천명 재일동포를 태우고 대열책임자로 올랐다. - 사회생활 경력은 어떻게 되나. 나는 1986년 8월 여자고등중학교를 졸업, 혜산방직공장에 배치 받았다. 1년 뒤 간호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제지공장 진료소 간호원으로 3년간 근무했다. 북한의 1급 공장 및 기업소에는 동(同) 진료소보다 작은 진료소가 있는데 간단한 구급약품만 있고 주로 처방과 긴급 발생한 환자의 응급처치 등을 한다.
1990년부터 혜산이 식량배급이 끊겨 1997년 두만강 건너 중국 친척집에 물품구입 나왔다가 생각 바꿔 현지서 돈 벌어 고향에 보내... 그렇게 6년간 여러 일 하면서 악착같이 벌어 혜산의 가족에 보내다 2004년 1월 남한 입국
- 고향 북한을 떠난 이유는. 1990년부터 혜산은 식량배급이 끊겼다. 월급도 없는 직장생활에만 매달리면 굶어죽을 판이니 장사를 했다. 1997년 두만강을 건너 중국 친척집에 물품구입차 나왔다. 생각을 바꿔 중국 현지에서 돈 벌어 고향에 보내주었다. 그렇게 6년간 여러 일을 하면서 악착같이 벌어 혜산의 가족에게 보냈다. 2004년 1월 서울로 왔다. - 하나원 나와서 무슨 일을 했나. 성실한 남한남자와 결혼하고 아들 2명을 낳고 주부로 살았다. 이후 자동차운전면허를 취득했고 2012년 간호사학원을 거쳐 간호조무사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2017년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어르신 돌봄 요양보호 일을 시작했다. 어르신을 찾아가 병원방문 및 자활치료 돕기, 가정에서 생활도움 등을 해드리는 업무다. - 고향 생각은 어떤 때 많이 나는가. 음력설과 추석 등 민속명절 때이다. 이번에도 탈북민에게는 가고 싶어도 못가는 서러운 추석이다.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조상님께 술 한 잔 드리고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대체한다. 그래도 명절이니 흥이 나게 놀아야 또 내일을 열심히 살지 않겠는가. 우리가 좋아서 온 남한이니 말이다. - 단원들의 활동이 열성이더라. 창단 초기에는 호기심으로 입단했던 단원들이 이제는 책임감을 갖고 임한다. 100% 봉사활동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합창단이다. 귀한 시간을 바쳐가면서 묵묵히 활동하는 단원들의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는다. 어쩌면 자기를 받아준 대한민국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으로 남북어울림합창단에 참여하는 탈북민들이다. - 꼭 남기고 싶은 말은. 우리 ‘남북어울림합창단’의 탈북민 단원들은 무료로 공연활동을 한다. 간혹 음력설과 추석 때 소정의 선물(생활용품, 식품)을 드리는 것과 몇 달에 한 번씩 하는 회식이 고작이다. 멋진 후원자 분이 나와서 합창단에 대한 재정지원을 해줬으면 바라는 마음이다. 공연 때마다 소액의 교통비라도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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