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남북대화와 국제협력 가능성 모색

[기획] 56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 ⑦
7대 국토통일원장관 이규호(李奎浩)

윤현중 기자 | 기사입력 2025/08/20 [20:23]

시대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남북대화와 국제협력 가능성 모색

[기획] 56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 ⑦
7대 국토통일원장관 이규호(李奎浩)

윤현중 기자 | 입력 : 2025/08/20 [20:23]

이규호 장관은 최규하 대통령 때인 19791214일 임명되어 1980521일까지 5개월간 재직했다. 19791026일 김재규 중정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었으며 한국 사회는 익숙한 지도자를 잃고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규호 국토통일원장관

이 과도기적인 비상상황에서 113일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비상시국대책회의를 열고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다. 이어 12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1221일 정식 취임식을 가졌다.

 

 

이 무렵 연세대 철학과 교수이자 정신문화연구원 연구부장이던 이규호는 최규하 대통령 내각 국토통일원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그의 기용 배경에는 제3세계 자립과 자주를 위해 강력한 국가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그의 일관된 소신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최규하 정권은 곧 중대한 격랑에 휘말렸다. 그가 대통령에 선출된 지 불과 엿새 만인 19791212, 군부 내 권력 다툼 속에서 전두환 합수부장 겸 보안사령관에 의한 ‘12·12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정국은 외형상 안정된 것처럼 보였으나, 권력 내부의 불안정은 깊어졌다. 이규호 장관은 충격을 받았지만, 통일정책 책임자로서 직무를 계속 수행했다.

 

북한 김일성 정권은 1980112, 대한민국이 수장을 잃고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두 가지 남북대화를 제의했다.

 

하나는 남북의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정치협상회의였고, 다른 하나는 남북 당국자, 더 나아가 고위당국자 회담까지 가능하다는 남북총리회담 제안이었다.

 

  최규화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이규호 국토통일원 장관

 

정부는 군중회의 같은 정치협상회의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총리회담은 그간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주장해온 기조에 따라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실무접촉을 제안했다.

 

이후 125일 이규호 장관은 신현확 총리와 대책을 협의했다. 같은 달 31일 전국 통일꾼대표자 회의에서 통일을 위해서는 분열주의적 움직임을 배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26일 시작된 남북 실무접촉에서는 회담 명칭, 장소, 의제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며 교착에 빠졌다.

 

이규호 장관은 남북문제와 더불어 서독과의 통일 경험 교류에도 힘썼다. 그는 211일 최규하 대통령에게 올해 한독협의회를 구성해 각료급 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으며, 48일에는 신임 서독 대사와 제1회 한독 각료회담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규호 장관이 서독과 통일문제를 심도깊게 논의하는 동안에도 국내 정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1980414,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정부장 서리까지 겸임하면서 권력 집중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었다.

 

이어 416일 사북 탄광에서 대규모 광원 시위가 일어났고, 5월 들어서는 서울에서 학생들이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이에 정부와 군부는 517일 전국계엄 확대를 단행하고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특별성명을 발표해 일부 정치인과 학생, 근로자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며 불가피한 조치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국민 반발을 불러와, 518일 광주에서 계엄군과 학생 간 충돌이 시작되었고, 곧 민주화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 시기, 이규호 장관은 서독 방문길에 올랐다. 그는 519에곤 프랑케서독 내독관계상과 제1회 한·독 각료급 회담을 열어 분단국의 통일문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521일에도 회담을 이어가며, 프랑케 장관으로부터 한국이 필요로 하는 모든 통일 관련 정보와 아이디어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해외 일정이 진행되는 사이, 국내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이 격화되었다.

 

이규호의 재임은 시대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남북대화와 국제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한 시기였다. 동시에 군부 권력의 부상과 민주화 요구의 격돌이라는 역사적 분기점과 맞물려 있었다. 521일 최규화 대통령은 대폭 개각을 단행, 이장관은 문교부장관으로 옮겨 갔다.

 

531일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을 맡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규호 문교장관도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했다. 198091일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문교부장관을 계속했고, 1985년 대통령 비서실장, 주일대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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