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서평] 핵물리학자가 들여다본 북핵의 실체핵의 변곡점/시그프리드 헤커, 엘리엇 세르빈 지음. 번역 천지현, 감수 김동엽얼마 전 저자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서 더 유명해진 화제의 책 ‘핵의 변곡점’은 원래 제목이 ‘Hinge Points: An Inside Look at North Korea’s Nuclear Program’이다. 저자가 북한에 가서 보고 듣고 북핵의 역사를 판단한 결과, 나름 여러 해결의 계기가 있었다는 의미에서 쓴 제목이다.
이 책의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저자 시그프리드 헤커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복잡한 경로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인물이다. 그의 부모는 발칸반도의 보스니아 사라예보 출신인데, 2차 세계대전 중에 폴란드로 이주했다가 그곳에서 헤커를 낳았다. 그래서 헤커의 고향은 폴란드다. 살았던 곳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멀지 않은 시골도시 토마셰프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자, 재혼했고 헤커는 어머니를 따라 오스트리아의 로텐만에서 살다가 1956년에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미국의 대학에 들어갔다.
그렇게 공부한 저자는 세계 최초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계획』으로 유명한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에서 11년간 연구소장을 지냈다. 그러는 동안 핵물리학자로 유명해졌다. 이후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재료 공학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2004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비공식 자격으로 북한의 영변원자력연구소를 방문해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평가해 왔다. 북한방문을 마쳤을 때인 2010년 11월에 헤커는 영변 핵시설의 발전 상황을 보고한 바 있다.
한편,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엘리엇 세르빈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헤커와 함께 일한 사람으로 주로 북한 핵프로그램의 역사와 현황을 연구했다.
헤커는 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북한을 방문해서 북한의 핵시설을 눈으로 확인하고 북한 핵관련 전문가, 관계자를 만나고 왔던 만큼 북핵에 대해 상당한 지식과 현장경험을 자랑한다. 그는 자신이 보고 알게 된 사실과 판단에 따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정부가 북한과 핵관련 협상을 했으나 부시, 오바마, 트럼프 세 행정부가 고비마다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해 북한이 탕자가 되는 길로 가도록 내팽개쳤다는 것이다. 변곡점에서 잘못된 길로 가도록 만들었다. 그때 미국 행정부가 선택한 북한에 대한 대응이 불가피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함으로써 기회를 놓쳤고 아쉬움을 남겼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세 번의 변곡점은 북핵문제의 터널에서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의 난관을 의미한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저들이 당초 목표로 삼은 미국과 관계 정상화로 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어렵게 하는 변곡점(hinge point)'이 있었다는 것이고 거기서 좌절을 겪고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 3가지 '변곡점'으로 든 것은 △2002년 부시 대통령 집권기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발생한 2차 북핵 위기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집권기 때의 대북제재 일변도 대북정책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실패 3가지다. 그는 변곡점이 있던 때의 미국 행정부의 결정을 아쉬워했다.
이에 실망한 북한이 미국에 대한 기대를 접고 방향을 선회해 비핵화 대신 북핵개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대신 중러접근으로 갔기 때문이다.
헤커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이중적인 접근처럼 보이지만 나름 이유가 있는 이중경로 정책을 폈다고 한다. 즉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외교적 접근을 하고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핵무기 개발을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중경로정책을 30년간 일관하게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북한이 그렇게 한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최종적으로 미국과의 국교수립 및 정상화에 최우선 순위를 두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의 대비책이 없으면 안 되니까 대체할 수 있는 카드로 핵개발을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헤커는 결론적으로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있었고 나름의 진정성도 있었다고 봤다. 그런데 미국이 북한을 잘 다독거리지 못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길로 갔고 결과적으로 비핵화에 실패하고 북한도 대북제재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불량국가로서 중러에 밀착하는 길로 가게 만들었다고 한탄했다.
이 과정에서 제재는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미국 내 보수 강경파, 대북제재 일변도의 보복과 응징 같은 수단을 바람직하지 않게 봤다.
창비 2023년 10월 27 발간, 정가 2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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