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 자존심 ‘북한자유주간’ 20년...폐막식 약속 “다음은 평양에서”[인터뷰] 탈북민 대북방송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중국이 자국에 구금 중이던 탈북자 600명을 기습적으로 북한에 송환했다. 배고파 탈북한 사람들을 인도주의적으로 돕지는 못할망정 사지로 돌려보낸 비정한 처사다. 중국 정부의 탈북자 집단 송환에 대해 정부는 “사실로 보인다.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중국 측에 엄중하게 (문제) 제기했다”고 했다. 인천시 강화에서 ‘자유북한방송’을 운영하는 탈북민 김성민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 중국의 600명 탈북자 북송을 어떻게 보나. 중국 정부가 늘 해오던 정책이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이번은 좀 달랐다. 평화의 상징인 국제스포츠대회(2022 아시안게임)를 마친 다음날 마치 군사작전 마냥 탈북자 600명 강제북송을 집행했다. 우리 정부의 공개적 외교노력에도 중국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결과다. 아직도 중국에 탈북자 2000명 정도가 북송대기 중인 것으로 안다. 늦게라도 한국 정부가 두 팔 걷고 나서야 한다. - 어떤 방법이 좋겠는가. 그동안 남한에 있는 많은 탈북민 단체, 북한인권단체들이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하라!”고 외치며 집회와 기자회견을 많이 했다. 그런데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결국이 이 방법이 전혀 안 먹힌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중국에 특사를 보내며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탈북자문제를 한중관계 속에 특별문제로 넣어 해결해야 한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면 한중 모두 이익이 될 것이다. - 중국에는 어떤 이익이 되는가. 중국은 미국과 G2로 불리는 세계 강대국으로 지난 1982년 난민협약과 1988년 고문방지협약에 모두 가입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국제사회서 ‘불량국가’로 낙인 된 북한 때문에 얻는 나쁜 이미지가 상당히 크다. 중국이 난민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UN)와 동등하게 지킨다는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면 매우 좋을 것이다. - 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이 문제(탈북자 강제북송)를 국제여론화 할 필요성이 절실하게 있다. UN을 중심으로 전 세계 평화인권 양심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인터넷을 통해 중국인민들에게 호소하는 방법도 있다. 북한과 중국은 자국 인민들이 수령(주석)과 노동당(공산당) 정권을 비판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히 억압통치를 하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에 탈북자 2000명 정도 북송대기 대한민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시주석과 정상회담 갖고 탈북자문제 한중관계 속에 특별문제로 해결해야 인도주의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면 한중 모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믿어
- ‘북한자유주간’ 20년 이끌어 왔던데. ‘북한자유주간’은 탈북민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국제행사다. 2004년 4월 28일 미국상원의 ‘북한인권법’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워싱턴의회 공터서 외쳤던 ‘자유북한!’ 구호가 발단이 되어 오늘까지 이어져왔다. 미국의 북한인권운동가 수잔 숄티 여사가 매번 대회장을 맡았고 내가 준비위원장 겸 운영위원장을 맡는 형식이다. 미국에서 할 때는 수잔 숄티가, 한국에서 할 때는 내가 직접 나선다. 강철환, 안 혁, 박상학 동지들이 초기 멤버이다.
- 20년의 변천사는 어떤 것인가. 7회째인 2010년부터 워싱턴과 서울에서 번갈이 개최되었다. 코로나19 기간에는 온라인(유튜브)으로 진행되었으며 작년부터 다시 현장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 20회를 맞은 ‘북한자유주간’인데 감회가 새로울 정도로 흥분됐다. 매번 주제는 북한내부, 외부현황 등을 고려하여 다소 바뀐다. 한 번 행사 때마다 대략 20개 안팎의 각종 프로그램(세미나, 집회, 기자회견, 탈북자증언, 퍼포먼스, 영상물시청, 호소문 발표 등)을 소화해 왔다. 앞으로도 같을 것이다.
- 보통 준비기간은 어느 정도인가. 대략 3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한다. 서울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은 어떤 때는 2개월 전에 행사예약을 하기도 힘들다. 행사참여 인원과 단체장들 귀빈과 연사 등을 섭외하는 것도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행사를 치르다보면 항상 돌발 상황도 발생한다. 그때는 정말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선다. 혈압이 오른다는 소리다.
‘북한자유주간’은 탈북민 가장 많이 참여 2004년 4월 28일 미국상원의‘북한인권법’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워싱턴의회 공터서 ‘자유북한!’외쳤던 구호 국제행사로 이어져
매년 행사 때마다 대략 20개의 프로그램 세미나, 집회, 탈북자증언, 영상물시청 등 발표하고 좋은 반응 얻어... 열심히 할 것
- 진짜 혈압 오른 일이 있었나.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북송 규탄집회를 했다. 행사 후 경찰서에서 “집회장서 스피커소음이 기준치에 넘어 조사를 받으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수년째 항암치료 중이니 갈수 없다고 하자 진단서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단서 보냈는데 나의 주거지까지 와서 조사를 했다. 결과 50만원 과태료를 물었으니 기가 막혔다. 서울에서 김정은 비판하는 것도 벌금을 물어야 하다니 참! - 기억에 남는 행사가 있다면. 제10회 북한자유주간(2013년) 행사 일환으로 연인원 300명의 탈북민들이 ‘제주-임진각 국토대행진’을 진행했다. 자유의 땅, 조국 남녘땅을 보무당당히 행진하며 북한 김정은 독재정권의 인민탄압 만행을 세상에 소리 높이 폭로했다. ‘탈북민 국토대행진대’는 제주-부산-대구-대전-세종-인천-서울-임진각을 거치는 노정이다. 경찰의 에스코드를 받으면서 행군했다. 탈북민 행진대가 들르는 거점지역 시·도청 앞에서 북한정권의 독재 만행을 고발하는 사진전도 열었다. - 수잔 솔티 가족에 애사가 있었던데. 최근 3년 사이에 그것도 연연이 가족에게 아픔이 있었다. 사랑하는 세 아들 중 두 아들이 사망했다. 웬만한 사람이면 지금 해오는 이 일(북한자유주간)을 포기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철의 여인, 수잔 솔티 여사이기에 굴하지 않고 오늘까지 온 것 같다. 정말이지 폭정에 시달리는 북한동포를 위해 이토록 애쓰는 분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2013년 제10회 북한자유주간 행사에 300여명의 탈북민들이 ‘제주-임진각 국토대행진’을 진행...자유의 땅, 조국 남녘땅을 보무당당히 행진하며 북한의 김정은 독재정권의 인민탄압 만행을 전 세계에에 소리 높여 외칰며 폭로
- 북한인권운동에 정권 영향은 받는가. 안 받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는 탈북단체장들이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통일부에서 있는 조항, 없는 조항 다 갖다 붙이며 조사를 한다고 난리를 피웠다. 귀순하겠다는 탈북자 2명을 안대 씌워 보냈으니 더 말해 뭐하겠나. 한편으로는 답답한 생각이 든다. 우리 탈북민들은 국내 정치에 상관없이 북한 독재정권 성토와 인민들의 짓밟힌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데 이게 왜 정권마다 다른 대북정책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하는지 정말 속이 상할 때가 많다. 지금까지 ‘북한자유주간’은 미국에서 대는 돈으로, 내가 운영하는 ‘자유북한방송’은 애국시민들의 후원금으로 한다. 정부의 돈을 받아 봤어야지 평가를 하겠는데 전혀 없다. 진보정권 시절에 우리가 대북활동(방송, 전단, 집회 등)하기 좀 더 편하다. 가끔씩 충돌을 하니 말이다. 투쟁은 좀 싸우며 해야 제 맛이다. - 신상에 시련의 시간도 있었던데. 솔직히 말해 지금도 연속이다. 미국에서 있을 ‘제14회 자유북한주간’(2017년) 준비로 서울에서 무척 바빴다. 워싱턴과 시차 때문에 새벽 4시 사무실서 일했는데 어느 날 컴퓨터에서 문자 조합 안 되는 걸 보고 이상했다. 며칠 뒤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어 병원서 CT를 찍었다. 뇌에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고 이후 대학병원인 서울M병원에 갔다.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뇌종양(암) 판정이 나왔다. 시초는 폐에서 시작되어 뇌로 이전되었다고 했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조병철 교수의사가 참여하는 본 병원과 미국의료연구원이 공동으로 임상실험 및 연구 프로젝트가 있었다. 날보고 거기에 응해보라고 하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의했다. 진짜 비싼 항암제인데 500cc가 천만 원이 넘는다. 3주에 1회씩 수십 대 맞았기에 지금까지 온 것 같다.
탈북민들은 국내 정치에 아무 상관없이 북한 독재정권 성토와 인민들의 짓밟힌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데 이게 정권마다 다른 대북정책에 포커스 맞춰야 하는지 정말 가슴 답답하고 속 상할 때가 많아
- 7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작년 10월 ‘제19회 북한자유주간’ 폐막식 때 “20회 부터는 단체장들이 순번제로 돌아가며 이 행사를 좀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선 내 몸이 피곤하여 많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작 나서는 사람도 쉽게 없더라. 올해 20회 행사 때도 둘째 날 병마가 돌발적으로 발생, 응급실에서 6시간을 보냈다. 병원에서 안정하라는 요구를 뿌리지치고 행사를 진행했다. 폐막식을 마치고 2일간 입원하여 응급치료(시술)를 받았다. 병마는 이젠 친구가 되었다. - ‘북한자유주간’은 언제까지 할 것인가. 거두절미하고 북한독재 정권이 없어지는 날까지다. 수잔 솔티 여사도 늘 말하지만 우리는 그날이 내일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희망과 꿈이 없었다면 ‘북한자유주간’이 시련과 풍파를 넘어 20년을 당당이 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 항상 그렇듯이 다음해 ‘북한자유주간’은 평양에서 하기로 약속을 하고 폐막식을 갖는다. “ 북한독재 정권이 없어지는 날까지 ‘북한자유주간’행사는 계속될 것 탈북민들은 그날이 내일이라고 확신 그런 희망과 꿈이 없었다면 시련을 20년을 당당이 보내지 못했을 것 항상 그렇듯이 다음해 평양에서 하기로 약속을 하고 폐막식 가져
- 고향이 어디인가. 1962년 6월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났고 2살 때부터 수도 평양에서살았다. 누이 5명 있었다. 부친은 북한에서 유명한 시인 김순석 선생이다. ‘벼 가을하러 갈 때’, ‘황금의 땅’ 등 3천여 편의 시를 쓴 북한의 대표적 문인이었다. 1978년 인민군에 입대, 4군단 28사단서 복무했다. 1988년에 군(軍)위탁생으로 평양의 김형직사범대학 어문학부를 졸업, 1992년 620훈련소 예술선전대 작가로 임명, 여기서 1996년까지 복무하였으며 최종계급은 대위였다. 인민군 병사(사병)생활 10년간 대북삐라를 자주 접했다. 그로해서 세상의 진실을 알고 나니 김정일 독재정권에서 나는 한갓 노예이고 벌레나 마찬가지임을 깨달았다. 하여 1996년 가을 부대를 탈영하여 중국으로 밀입국했다. 이듬해 2월 체포, 평양으로 압송 중 탈출하여 중국에서 3년 고생 끝에 1999년 2월 서울로 왔다. - 자유북한방송은 언제 만들었나. 탈북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2004년에 개국했다. 설립 목적은 북한독재 정권아래 소경이 되고 귀머거리가 된 2천만 인민에게 남한의 소식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서다. 또한 수령의 독재정치를 세상에 낱낱이 폭로하기 위함이다. 2008년 국경 없는 기자회 매체상, 2009년 대만민주화기금 아시아민주인권상, 2019년 북한인권상 등을 수상했다. 이것은 우리 3만 탈북민들이 받은 영광이기도 하다. 또한 나에게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열심히 살라고 준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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