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 40%가 ‘정치성향이 다르면 밥도 같이 먹기 싫다’는 조사가 발표되었다. 우리 국민 10명 중 4명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식사·술자리를 함께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문제는 상이한 정치성향이 사회 갈등과 분열을 조장시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성향 차이에는 여러 요인이 존재하지만,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은 북한에 대한 접근법이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북한 문제를 접근하는 극명한 차이를 보여 왔다. 이러한 차이는 곧 과도한 색안경 논쟁을 불어 일으켜 한반도를 양극단으로 물들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북한을 바라보는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의 색안경이 대립하는 실정이다.
서로 너무 다른 보수와 진보의 색안경
한국 보수의 색안경은 북한을 상대적으로 빨간색으로 보고 있다. 그 기저에는 북한에 대한 '경계심'과 '적대감'이 내제되어있다. 냉전 시기 반공주의에 기초하여 북한을 타도해야 하는 대상인 주적으로 인식한다. 그렇기에 안보적 차원에서 북한을 상대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여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한다. 핵개발과 무력도발을 일삼는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도 크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대북 억제력을 강화해 북한 핵문제 등에 강경대응을 주장한다. 또한, 북한 인권 문제개선을 촉구하고 북한 정권의 폐해를 지적한다. 이렇듯 북한을 바라보는 보수 진영의 색안경은 북한에 상대적으로 배타적이다.
또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개발 등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 경제·사회·문화 협력을 중시한다. '분단 체제 극복'과 '남북관계 개선' 그리고 '한반도 평화 달성'을 핵심 가치로 두어 남북한 공동번영을 영위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북한을 바라보는 진보 진영의 색안경은 북한에 상대적으로 호의적이다.
물론 색안경을 끼고 북한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시각을 존중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 문제를 두고 보수·진보의 지향점과 입장이 뚜렷할수록 건전한 논쟁과 경쟁을 통 생산적인 담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색안경이 남긴 한국 사회 폐해 심각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다. 색안경 색이 너무 짙어 다른 색은 보지 못하는 정도에 이르고 있다. 색안경에 과도할 정도로 집착해, 각자가 쓰고 있는 색안경으로 보는 세상이 곧 전부라고 인식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은 사라지고 상처만 남았다. 맹목적 배타주의에 사로잡힌 색안경에 경도되어 우리 사회는 3가지 폐해를 입어 왔다.
첫째, 극단적인 남남갈등이다. 과도한 색안경은 색깔론을 유발시켜 레드 컴플렉스와 같은 남남 갈등을 조장해왔다. ‘종북 세력’, ‘빨갱이’, ‘분단 세력’과 같은 혐오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상호 간 쌓인 적대감과 불신은 더 깊은 갈등을 낳았다. 둘째, 매몰된 진영 논리다. 한반도를 갈라놓은 이념논쟁은 한반도를 남과 북에 이어서 한국사회 마저 분열시켰다. 한국의 정치권은 서로 다른 색안경을 쓰고 각자가 보는 색깔대로 세상을 제단하고 있다. 이념 양극화는 가혹 화 되고 국익은 저해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의 목소리는 수용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셋째, 대북정책의 일관성 상실이다. 북한을 서로 다른 색깔로 바라보며, 혼란은 가중되어왔다. 대북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상이한 색안경을 끼고 서로 다른 정책을 수립해오면서, 대북정책의 일관성은 가지지 못했다. 대북정책의 원칙 역시 끊임없이 재정립되어 정책수행의 효율성은 떨어졌다. 그 결과 일관적이지 못한 대북정책은 국민에게 큰 혼선을 야기시켜 결국, 불안전한 남북관계를 초래했다.
색안경에서 벗어난 초당적 합의 절실
색안경을 쓰고 북한을 둘러싼 이념적 갈등이 고조되는 현상은 이제는 근절되어야 한다.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쟁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이제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색안경에 경도되어 관념적인 주장을 내세우지 말고 충분한 이론과 논리를 뒷받침해야 한다. 충분한 학계에 검증과 체계에 기반 해 주장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보수·진보 사이에 초당적 합의를 통해 컨센서스를 구축해야 한다. 서로의 색안경이 보는 세상의 장단을 인정하여 더 나은 세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상호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충분한 합의를 통해 최소한의 임계치를 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한 모든 사안의 대응 수위를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정하여 모든 논의를 그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무력도발을 자행했을 때, 보수·진보에 관계없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을 합의하는 것이다. “근데 재준아 넌 모르잖아 알록달록한 세상”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의 명대사 중 일부다. 색안경을 낀 우리 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고 본다. 특정한 색깔로만 북한 문제, 나아가 세상을 평가하는 풍조가 지속된다면, 사회가 지닌 다양한 색깔과 개성 그리고 목소리 등을 경시하게 된다.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세상의 모든 색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필요하다. 색안경을 끼고 소모적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초당적인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시대가 직면한 과제를 색안경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보는 용기를 모든 사회 구성원이 갖추기를 염원한다.
한반도청년미래포럼 비즈니스 매니지먼트팀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정치외교학 전공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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