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 인민이 ‘자유’를 아는 그날까지 대북전단 필요”

[인터뷰] 자유북한운동연합 박 상 학 대표

림일 기자 | 기사입력 2022/10/04 [20:20]

“2천만 인민이 ‘자유’를 아는 그날까지 대북전단 필요”

[인터뷰] 자유북한운동연합 박 상 학 대표

림일 기자 | 입력 : 2022/10/04 [20:20]

광화문광장서 8·15 열린 ‘자유통일

주사파척결 8·15 일천만국민대회’참석

테이프 감긴 130cm몽둥이로 가격당해

 

평양의 김일성광장서는 국가기념일마다 김정은이 참석하는 ‘1호 행사’로 군사퍼레이드와 시민경축모임 등이 열리기로 유명하다. 대내외에 보여주기 효과가 좋은 광장정치에 철두철미 강한 인민통제와 무력시위를 잘 섞어 활용하는 것이다.

서울의 광화문광장서는 해마다 광복절이면 많은 시민단체들이 대규모 정치이념(보수·진보) 추구집회가 진행된다. 수만 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초대형스크린 등 중장비까지 동원되고 행사 이후 이어지는 평온한 일상도 다소 놀랍다.

독재국가와 자유민주국가의 도심 속 광장문화가 이렇게 다르다. 탈북민들은 남한사회에 어리둥절해지며 또한 감동되기도 한다. 북한에는 정치이념 자체가 없으며 모든 인민에게 하나의 사상, 즉 수령절대 충성심만 존재한다.

지난 8월 15일, 예년처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보수단체의 집회가 있었다. 이 행사에서 북한인권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가 쇠몽둥이 테러를 당했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8월 15일, 당한 테러를 말해 달라.

그날 오후 3시경, 광화문광장서 열린 ‘자유통일 주사파척결 8·15 일천만국민대회’에 참석했다. 사회자의 안내로 연설차례가 되어 연단에 오르는데 무대 뒤에서 “죽여라!” 하는 고함소리에 그쪽을 보았다. 얼핏 보기에 50대 전후 반의 남성이 “박상학이 네 이놈!” 하며 쇠몽둥이로 나를 내리쳤다. 평소 운동을 조금하는 편이어서 본능적으로 오른팔로 쇠몽둥이를 막았다. 신변보호 담당경찰이 즉시 그를 제압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범인이 사용했던 쇠몽둥이는 130cm이고 겉면에는 빨간색 테이프가 감겨져 있었다. 그의 소지품에서 나를 비난하는 글(A4용지 한 장 분량)이 발견되었다. 아주 치밀한 증거이고 일면식조차 없는 사람이다.

그는 사건발생 현장 관할지인 종로경찰서로 체포 이송되었다. 나는 서울 가락동에 소재한 경찰병원에 이송되어 정밀검사를 받았고 골절상으로 진단, 입원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범인을 어떤 인물이라고 추정하나.

사건발생 닷새 전인 8월 10일, 북한 김여정이 평양서 있은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연설에서 “너절한 적지물(대북전단) 살포놀음의 앞장에 선 짐승보다 못한 추악한 쓰레기들” 이라며 사실상 강력한 보복을 예고했다. 이것은 분명 김정은의 폭언(위협)과 연관성이 있고 서울의 종북 좌파분자로 보여 진다.

▶이후 상황을 설명해 달라.

사건의 실체를 철저히 국민에게 밝히고 또 다른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하였다.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부처, 여당인 국민의힘 등은 연락이 없다. 문재인 정부보다 더 못한 것 같아 섭섭하다.

종로경찰서장은 내가 입원한 날부터 ‘진단서를 떼서 보내라’고 한다. 이런 사건은 가해자를 체포해 경찰청안보수사대에 맡겨야 한다. 언론도 침묵하고 경찰은 경찰대로 회피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한 행동은 없다. 있다면 현재 나를 보호하는 신변보호 경찰관을 6명에서 8명으로 증원한 것뿐이다. 사건 당일 현장에 신변보호 경찰관이 있으면서도 테러행위를 막지 못했는데 인원이나 증강하면 뭐하는가. 현실이 이러하니 어떤 때는 내가 신변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신변감시를 당하지 않는가하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이번 사건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다.

금배지를 달고 있는 여의도 국회의원들이다. 북한 김여정의 말 한 마디에 국회서 대북전단금지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국민의 대표라니 참 기가 막히다. 이들에게는 북한에서 김정은·여정만 사람으로 보이고 2천만 주민은 관심도 없다. 여당의 국회의원들도 별반 차이가 없다. 

▶대북전단(삐라) 역사를 말해 달라.

남북의 비난은 1962년 북한이 대남방송을 시작으로 개시되었다. 이에 대응차원서 국군이 삐라살포작전(대북전단)을 했다. 70~80년대는 남북이 치열한 체제경쟁을 했고 동구권사회주의가 무너진 90년대 들어 서서히 중단했다.

이후 탈북민들이 하는 것이다. 수령의 독재정치로 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300만의 부모형제가 굶어죽었는데 우리가 가만있으면 되겠는가. 탈북민들이 북에서 모르고 살았던 세상의 진실(남한의 발전상)을 전단에 담는 것이다.

▶주로 어떤 내용인가.

남조선은 아시아에서 일본, 싱가포르, 대만에 이어 네 번째로 잘사는 나라로 경제발전은 세계12위 국가라고 밝혀준다. 세계 자동차생산 6위, 조선업 1위, 반도체생산 1위,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멋진 나라가 남조선임을 알려준다.

또한 대통령을 전체 국민의 선거로 뽑고 일을 잘못하면 그 자리서 끌어내린다. 거주·이사의 자유가 있는 남조선 인민들은 언제 어디든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으며 집집마다 자가용 승용차를 두고 사는 현실을 알려준다. 또 이것은 북한주민에게 탈북민들 잘 살고 있다는 몸짓이기도 하다.

▶ 남북 접경지대 주민들이 불안해한다.

참으로 미안하다. 그러나 좀 더 아량과 대의로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북녘의 2천만 우리 동포들이 독재자의 발굽아래 70년을 짐승처럼 살고 있다. 우리는 여기 남한에서 하루 세끼 더운밥 먹고 따뜻한 집에서 편한 잠을 자는 생활을 하지만 북한의 동포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살고 있다. 그들의 아픔을 생각해달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다.

▶그 일로 검찰조사를 자주 받았던데.

나는 경찰이나 검찰에 가서도 똑같이 말한다. 내 고향에서 김정은 독재자의 발굽아래 신음하는 가족형제들에게 남조선이 잘 사는 나라라고 말해주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는가? 내가 거짓말을 했는가? 시종일관 북한주민들이 노동당의 허위선전으로 잘못 알고 있는 남조선이 세계에서 모범적인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 쾌거를 이룩한 국가임을 사실 그대로 알려줄 뿐이다. 이게 뭐가 잘 못 되었냐며 조사관들에게 묻기도 한다.

그러면 그들은 다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접경지역 남한주민들과 똑같은 북한동포들이다.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생명은 남이나 북이나 똑같다. 정부는 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지 못할망정 제발 뒷다리만 안 잡아도 좋겠다. 다른 말로하면 북한에 남한을 홍보하는데 벌금을 물리려하니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닌가.

▶‘광복절’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한 이유가 있는가?

올해가 ‘광복 77주년’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광복절’이라 하지 않았다. 그러니 올해는 ‘건국 74주년’이다. 일제식민지에서 그것도 남의 나라 덕분에 해방된 날(1945년 8월 15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국가적으로 기념하는지 통 모르겠다.

당연히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한 이 나라,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우리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한 건국일(1948년 8월 15일)이 국가 최대기념일이 되어야 한다. 전 세계에 건국절 없는 나라는 남한뿐이다. 북한도 있다.

▶고향이 어디인가.

양강도 혜산이고 1968년 2월생이다. 92년 평양의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소속 속도전지도총국 선전선동부 부원으로 근무했다. 97년부터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38국 산하 외화벌이기관에서 일을 했다. 99년 10월 온 가족과 함께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북했다. 연길, 선양, 대련에서 3개월간 숨어 다녔으며 위조여권을 갖고 2000년 1월에 서울로 오게 되었다.

▶사회생활 초기는 어떻게 보냈나.

서울대학교 부속 모바일연구소 연구원으로 3년간 근무했다. 언젠가 후배에게서 충격소식을 들었다. 우리가족 탈북으로 인해 보위원들이 두 삼촌을 때려죽였으며 나의 약혼녀도 보위부에 끌려가 두 달간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고향에 남겨진 그들은 나름대로 사회에 충성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내가 오늘까지 대북전단을 보내는 북한인권운동을 하게 된 이유인 것이다. 김정은의 독재정치가 변하지 않는 이상 나도 이 운동을 멈출 수 없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어떤 단체인가?

지난 2007년 9월에 설립하였다. 그보다 앞서 2년간 북한민주화운동본부서 사무국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보다 차별화 된 대북운동을 고민하다가 대북전단임을 확신했다. 참고로 정부는 1990년대부터 대북전단을 중단했다. 남한사람이 보내는 것과 탈북민이 보내는 것은 북한주민들이 볼 때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판단했다.

우리 단체가 생기기 1년 전, 미국을 방문하여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2시간 동안 있은 오찬에서 대북전단 10장을 부시에게 보여주면서 한국정부에서는 다소 어려워하니 미국이라도 좀 도와달라고 했다.

부시 대통령이 오케이 했고 며칠 뒤 UN주재 북한대표부서 “미국 정부가 박상학에게 돈을 지원하면 6자회담 보이콧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남한의 언론에서 “박상학이 누구며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관심을 가졌다.

▶이번까지 몇 차례 테러 위협인가.

크게 보면 세 차례이다. 2011년 서울지하철 논현역에서 나에 대한 테러미수가 있었다. 국내에 이미 정착한 탈북자 안OO 씨가 중국에 업무상 드나들다가 보위부로부터 “박상학을 독살하라!”는 임무를 받았던 것이다. 그 이듬해도 있었다. 탈북자로 위장한 북한정찰총국 소속 간첩이 국정원 조사에서 정체가 드러났다. “민족반역자 박상학이를 처단하라!”는 특별임무를 받고 서울에 ‘가짜 탈북자’로 들어왔었다.

북한의 김정은·여정은 고난의 행군시기 300만 인민을 굶겨 죽인 살인마 김정일의 아들·딸이다. 그런 악마들의 총에 맞아 죽는다면 나는 ‘정의의 용사’ ‘자유의 투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 탈북민들이 모두 그렇지 않은가. 그 잔인한 독재정권을 뛰쳐나올 때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대한민국에 와서 인간으로서의 참다운 자유를 누렸으니 내일 당장 독재자의 총에 맞아 죽어도 후회는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인민의 아들’이다. 잔인무도한 김 씨 수령 3대 독재자의 발굽아래 한갓 짐승처럼 사는 2천만 인민이 ‘자유’가 무엇인지 아는 그날까지 대북전단을 끊임없이 북녘으로 보내겠다.

대북전단금지법! 인민의 자유와 인권보다 우선인 것은 어떤 것도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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