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민 100%아파트 생활…러시아 모스크바와 닮은꼴”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 12] 냉면보다 유명한 명물… 1920년대 평양기생학교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01/07 [20:57]

“평양시민 100%아파트 생활…러시아 모스크바와 닮은꼴”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 12] 냉면보다 유명한 명물… 1920년대 평양기생학교

통일신문 | 입력 : 2021/01/07 [20:57]

평양에서 B책임지도원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다음에 올 때는 한 5천 달러 가져오시오.” 나는 순간적으로 발끈했다.
“이봐요. B선생! 그딴 얘기 말아요. 5천 달러가 누구 어린애 이름이오? 그리 쉽게 말하게.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정말 돈 벌기 쉽지 않아요. 여기서야 수령님 덕분에 편히 들 걱정 없이 살지, 해외교포들은 전부 치열한 경쟁아래 피땀 흘려 겨우 돈 모아 갖고 오는 사람이 대부분일 꺼요.”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평양에서만 50여 년간 거주했다는
토론토의 한 고위급탈북자 노인은
평양시민 50~60% 정도 당원일 것

한번은 그가 평양에 대해 상세한 소개를 할 때다. “평양은 6,25 전쟁당시 지상건물은 한 채도 남아 있지 않소.”하며 “완전 잿더미에서 새로 평양은 탄생한 신흥도시”라고 주장했다.

“듣기에 평양은 선택받은 주민이나 거의 당원들만 산다고 하든데 그게 사실입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화부터 버럭 냈다.
“도대체 누가 그따위 말을 한다는 말이오? 그 얘기 어디서 들었소?” “아마 책에서 본 것 같은데..” “기자선생, 거짓말 마시오. 어느 책에 그렇게 쓰여 있습디까?” B는 꼬치꼬치 캐물었다.

평소 나는 그렇게 믿고 알고 있었을 뿐이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겁니까. 아니면 아니지. 그럼 잘 모르는 내용은 질문도 못한단 말이에요?” 그는 기분이 상한 듯 한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훗날 얘기지만 평양은 당원들만 사는 도시는 아니었다. 방북횟수를 거듭하며 만난 주민들 정보와 소수지만 평양출신 탈북자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확실한 통계는 밝혀있지 않지만 적어도 70%정도 시민이 당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평양에서만 50여 년간 거주했다는 토론토의 한 고위급탈북자 노인은 자신 있게 말했다.

“아니오. 50-60%정도가 당원일겁니다.” 김일성주석 측근이었다는 이 고위급탈북자에 관련해선 나중 다시 언급하겠다.

초창기 방북 시의 한국 상황과 경험이다. 지난 옛일이지만 바로 엊그제 일같이 생생한 기억이다. 주변에선 과거 내 방북 건을 외국시민권자(1979년 캐나다시민권자)이니, 북녘 땅을 쉽게 오가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당시 분위기 등을 새삼 밝힌다.

북한방문은 언제이고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무 잘못이 없어도 평양공항 출입국 통과 시는 긴장되고 조심스럽다. 그건 누구라도 아마 마찬가지 심정이리라.

김정은 정권 이래 도시 대폭 현대화
평양은 러시아 모스크바와 꼭 닮은꼴
국영서커스(북한 명 교예)기술 세계적

1980-90년대 대한민국 공항역시 그랬다. 한국에서 겪은 지난 경험을 밝힌다. 나는 캐나다시민권자라 다소 북한출입이 자유로웠지만, 방북이력 때문에 김포공항(인천공항개항은 2001년부터) 출입국심사 때 간단치 않았다.

출입국 심사대 통과 때는 따로 세워놓고, (캐나다)여권을 샅샅이 살핀 뒤 보내주곤 했다. 서울체류기간 중에도 은밀히 내 움직임을 감시당했다. 처음에는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매일 볼 일을 보고 지인들과 술도 한잔하고 호텔로 돌아오면 대개 밤11시가 넘는다. 그때마다 어둠속에 주차했던 차 한대가 헤드라이트를 번쩍대는 것이다.

처음엔 무심히 넘겼다, 사흘 째 같은 일이 반복되자 비로소 눈치를 챘다. ‘아, 내가 미행당하고 있구나.’ 그 후 교통사고도 두 번 당했다. 한국방문 직전 누군가가 내게 힌트를 준적이 있다. 한국가면 택시사고를 조심하라고. 이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이비락인가. 그 해 삼각지 부근에서, 다음해는 양화대교 근처에서 차사고가 났다. 두 번 다 뒤차가 내가 탄 택시를 들이받은 것이다. 대낮 음주운전이 아니었다.

두 번째 경우는 정말 이상했다. 한번 힘껏 받더니 다시 연거푸 들이받았다. 사고를 일으킨 자는 30대 중반정도로 절절매는 시늉을 했다. 택시기사는 한마디 불평도 없이 내 눈치를 봤다. 약속시간이 늦었고 일단 몸이 괜찮으니 택시에서 내려 내 갈 길을 갔다. 그때 당장은 몰랐으나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한동안 목 때문에 고생을 했다. 이런 황당한 일을 겪으며 북쪽 행사취재를 계속하며 남북을 들락거렸다. 변함없이 뒤에서 응원해주는 언론인들이 있었다. 강원일보 최선배(전무)는 1992년 나를 모스크바 초대특파원으로 추천해줘 이때 교포기자에서 한국기자로 전환케 된 계기가 만들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평양시민들은 100% 전부 아파트 생활을 한다. 모스크바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정권 이래 도시가 대폭 현대화로 변모됐지만 평양은 러시아 모스크바와 꼭 닮은꼴이었다. 두 도시 모두 땅속 깊숙이 뚫은 지하철하며, 파리 개선문을 모방해 일찍 개선문을 세웠다. 또 공통점이 국영서커스(북한 명 교예)기술이 세계적이다.

당원, 비당원 막론 지방 주민가족 중
영재어린이들 발굴하는 제도… 선발된
어린이는 부모와 분리시켜, 어린이만
평양으로 데려와 특별교육 시키는 점

또 오래전부터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환경에 신경 썼다. 모스크바 대형 아동백화점, 아동극장, 어린이도서관 등 평양역시 일찍 평양소년궁전 등 어린이시설을 마련해 놓았다.
한편 당원, 비당원 막론하고 지방 주민가족 중 영재어린이들을 발굴하는 제도다. 선발된 어린이는 부모와 분리시켜, 어린이만 평양으로 데려와 특별교육 시키는 점이다.
청진의 한 탈북자는 1년에 한두 번 평양으로 간 자녀만나는 재미로 인생을 살아 왔다고 전했다.

평양하면 평양냉면이 소문나 있다. 예전엔 냉면보다 더 유명한 평양명물이 있었다. 1920년대 평양기생학교이다. 지금은 자취도 사라졌지만 모란봉 부벽루의 평양기생 발자취는 가끔 화제에 오른다. 옛 부터 묘사된 평양8경 풍류는 이름나 있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유명세는 변함이 없다.

평양8경 정경이다. △ 을밀상춘(모란봉 을밀대에서 바라보는 봄 경치) △ 부벽완월(부벽루에서의 달맞이 풍경) △ 영명심승(해질 무렵 영명사에 중들이 찾아드는 모습) △연당청우(대동문에서 종로로 통하는 길 한복판에 있었던 연못에 비 내리는 소리) △보통송객(보통강 나루터에서 떠나는 나그네를 전송하는 광경) △ 용산만취(용산 즉 대성산의 소나무가 늦가을에도 푸른 풍경) △ 거문범주(수레문 즉 옛날 평천리 앞을 가로막았던 외곽 성문유지에서의 뱃놀이) △ 마탄춘창(이른 봄 대동강의 여울 마탄의 눈 섞인 물이 소용돌이치는 풍경)을 손꼽았다.

한국경우 지난2007년 서울8경 역시 선정한다고 서울 명소 수십 군데를 추천받아놓았다고 들었다. 전문가와 시민들로부터 의견수렴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지 오래다.  또 2007년은 평양에 개신교 최초 장대현교회가 세워진 지 100주년 되는 해(평양 대 부흥)였다. 동방의 예수살렘이라 부르는 평양 장로교회는 복음의 중심지로서, 당시 만수대언덕은 현재 김일성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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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의 핵심 생명줄 '고려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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