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돈 지불하고 산 왕복표를 다시 사야만 합니까?”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 11] “평양도 꽃제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12/28 [00:05]

“이미 돈 지불하고 산 왕복표를 다시 사야만 합니까?”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 11] “평양도 꽃제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통일신문 | 입력 : 2020/12/28 [00:05]

숙소 대동강호텔 (나중 화재로 전소함)에는 마침 밴쿠버에 거주하는 마이크 로우(56세 유엔설비기술자)도 체류해 있었다. 그는 북한 여러 도시의 낙후된 공장시설 등을 새 설비로 바꾸려는 UN프로그램 일환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텅 빈 식당 둥근 식탁에 우리 둘 자리를 고정시켜 놓고 식사 때마다 바깥세계정보와 북한경험을 나누었다.

바깥정보라야 전화로 듣는 소식 고작

방북 후엔 바깥세계와는 두절된 상태

이때 영국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죽은 소식도 그를 통해 들었다. 실상 바깥정보라야 외국에 전화해 듣는 소식이 고작이다. 방북 후엔 아예 바깥세계와는 두절된 상태가 된다. 그가 캐나다에게 전화했을 때 부인이 알려준 소식이라고 한다.

국제전화요금은 엄청 비쌌다. 1분에 몇 센트 하는 전화가 분당 8달러였다. 그것도 벨이 울리면서 통화요금이 계산됐다. (캐나다는 수신자가 받고나서 통화료가 부과된다.)

마이크는 어제 간단한 팩스 한 장 보내는데 미화22달러가 나왔소. 세상에 이렇게 비싼 데가 어디 있겠소?” 투덜댄다. 종전보다 모든 가격이 올라있었다. 책임지도원은 이를 인정했다.

아무나 쉽게 살수 없도록 물건가격을 올렸어요.” 가격문제만이 아니었다. 상품도 부족했다. 필름이 부족해 구입하려 했으나 허사였다. 특급호텔인 고려호텔에도 없었다. 안내원은 자신 있게 말했다.

염려마세요. 원산에 가면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 원산 상점에도 없었다. 이 때문에 필름을 극히 아껴 사진을 찍어야 했다.

평양에서 어느 날 아침이다. 새벽 일찍 안내원 없이 호텔 옆 대동강변으로 나갔다가 벤치에 홀로 앉은 한 노인을 만났다. 김대(김일성종합대)1기생(경제학부)이라는 그는 자주 운동하러 새벽 강가로 나온다한다. “저는 캐나다에서 왔는데 나라형편이 퍽 힘든 것 같아요.”하자

캐나다 대표단인가

아니요.”

대표단 아니면 우리나라에 못 들어오는데그래. 우리나라 경제가 망태기(망했다는 의미)가 됐어. 배급이 제대로 안 나오니 공장에선 기계부속까지 떼어다 팔아먹는다던데 참 큰일 났어.”한다. 한마디로 북한경제균형이 안 맞는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전력, 석탄난 등으로 나라사정이 악화돼, 언제 사정이 좋아질지 모르겠다며 탄식했다.

이 어려운 순간에도 나는 평양 안내책자에 소개된 유명 요리전문점이라는 광복거리 광양루를 찾아 나섰다. 북한 자장면 맛은 어떨까 해서. 유명 숭어국() 집도 닫혔고,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조차 재료가 부족해 외국손님은 안 받는다는 소문이다. 도대체 안내원은 자신이 사는 평양사정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모른 체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조선민항 기내 음악 고향의 봄, 반달,

아리랑으로 바뀌고 경음악 등 달라져

그런 와중에 평양 중구역 빙상관 앞에서 구걸하는 한 조그만 소년(꽃제비)을 만났다. 깜짝 놀랐다. 평양 한복판에 거지라니. 안내원은 급히 쫓으려 했으나 소년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대여섯 살 정도 돼 보였다.

아닙니다. 적어도 10살은 됐을 겁니다. 지금 꽃제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나중에 호텔로 돌아와 마이크에게 낮에 본 꽃제비 얘기를 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신의주에는 그런 소년들이 어디서든 쉽게 눈이 띤다.”고 말했다.

조선민항(현 고려항공)을 처음 탔을 때가 생각난다. 좌석 앞에는 박띠(좌석벨트)를 매시오.”라고 적혀있었고, 기내에서는 김일성장군의 노래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가 흘러나왔다. 이후 기내음악은 세월흐름 따라 고향의 봄, 반달(푸른 하늘 은하수), 아리랑 노래로 바뀌고 경음악 등으로 달라져 갔다. 일반 항공기처럼 양담배, 양주 등 면세기내쇼핑도 한다. 기내에선 일체 금연이다. 방송은 한국어와 영어로 안내한다.

손님 여러분, 평양공항까지 25분 남았습네다. 지금 비행기는 신의주상공을 통과하고 있습네다. 밑으로 보이는 강이 압록강입네다.”

아래 굽이굽이 압록강 줄기는 조국의 산하를 갈라 펼쳐져 있었다. 강은 우리 겨레의 한을 모르는 듯 조용하나 처연해 보였다. 비행기가 북녘 땅으로 들어서자 완공 안 된 105층 유경호텔이 먼저 시선에 잡혔다. 공항청사 복판에는 김일성초상화가 우뚝했다. 대형 초상화에서 북녘 땅에 온 것임을 실감했다.

 

송광호가 홍광호로 잘못 기재돼

있었구먼 사증수수료 25달러 내시오

90년대 방북 시 처음부터 이상스레 일이 꼬였다. 북한비자를 위해 북경대사관을 찾으니 발급이 안됐다는 것이다. 할 수없이 호텔에서 다음 항공편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항공편이 수일간격으로 1주일에 2번뿐이니 한번 놓치면 시간과 호텔비를 낭비한다. 며칠 후 대사관을 찾으니 지난주 이미 내 비자가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대사관 실수였다.

. 송광호가 홍광호로 잘못 기재돼 있었구먼. 사증수수료 25달러 내시오.” 이것이 그들이 내게 던진 인사말이다.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비자를 거머쥐고 공항으로 나가니 이번엔 항공표(북경-평양 간)가 말썽이다. 토론토에서 티켓구입 시 기재사항에 뭐가 빠진 모양이다. 북한공항관리는 추호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 비행기 표 누가 적었소?” “처음엔 토론토공항담당자가 적다가 나중 일부분은 제가 적었습니다.”솔직히 답했다.

표를 아무나 함부로 적어도 되는 줄 아시오? 이 표는 유가증권이요. 유가증권! 잘못됐으니 다시 표를 사갖고 오시오.”

잘못됐다니 미안합니다. 그러나 이미 돈 지불하고 산 왕복표를 다시 사야만합니까? 잘못 기재된 걸 고치면 안 되겠어요?” 나는 변명에 급급했으나 허사였다. “이 표는 나중 환불받든지 하고, 다시 사갖고 오시오. 이 표는 받을 수 없소.”

그는 눈 하나 깜빡 안했다. 50대 초반쯤 보이는 이 북한관리는 자신의 알량한 세도를 약자에 군림하려는 듯 했다. 아주 오래전 서울 한 구청공무원으로부터 겪은 비슷한 경험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찌 이러한 행위가 20여 년 전 한국사회와 그리 유사할까. 북한이 뒤떨어져 있는 점은 유독 물질적 측면만이 아니었다. 도대체 친절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새로 편도티켓을 사서 짐을 달아보니 이번엔 무게가 엄청 초과돼 있다. 남이 부탁한 이산가족 보따리 때문이다. 허용무게가 20kg을 넘어 35kg이나 됐다. 초과분 15kg 비용을 내는데 돈 계산법이 재미있다. 북한국적 자에게는 초과kg2, 중국교포 4, 북미 주 교포경우는 8원이다. 자본주의국가 국민에겐 추가요금을 더 많이 부과하는 규정이 아예 정해져 있었다. 북한에선 미주에서 방문했다하면 전부 재력이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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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의 핵심 생명줄 '고려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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