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그렇게나 말하고 싶어 못 견디나?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11/24 [22:28]

[모란봉] 그렇게나 말하고 싶어 못 견디나?

통일신문 | 입력 : 2020/11/24 [22:28]

<박신호 방송작가>

언뜻 생각하기에 젊었을 때는 남의 얘기를 하기보다는 자기 얘기를 더 많이 하는 줄 알았다. 젊음이란 저 잘난 맛에 사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남보다 뒤쳐지지 않으려면 자기 자랑이나 선전부터 하려다 보니 남의 얘기보다 자기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 줄 알았다.

한데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꼭 그런 거 같지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만 같다. 나이가 들수록 남의 얘기를 많이 하기보다 자기 얘기를 더 많이 하게 되지 않나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꼭 그렇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많아지면 산 날보다 살날이 길지 않은데다가 살아생전에 할 말 다 못하고 죽으면 억울해 할까 싶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옛말에 활은 다 쏘고 죽어도 말은 다 못하고 죽는다고 했는데 여전히 우매한가 보다.

우리 어머니는 옛날분이시다. 100년도 훨씬 전에 태어나신 분이니 학식이 깊을 리 없고 세상사 다 아실 리 없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옛날얘기나 속담으로 자식들을 일깨우시곤 하셨다. 그때 들려주시던 그 말씀이 지금도 큰 가르침이 되어주고 있다.

가령 ‘옛말 하나 그르지 않다’고 하시거나 ‘틀린 속담 없다’고 전제하시며 하신 말씀을 하나하나 회상해 보면 어쩜 그리도 절절히 맞는 말인지 새삼 놀랍다. 자식들 마음을 꿰뚫고 그에 맞는 말씀만 하셨기에 그랬지만 아무리 자식이 다 크고 똑똑하다고 해도 결국 어머니 말씀에 옴짝 못 하곤 했다.

“법이 뭐냐? 지나기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라”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아는 걸 그걸 몰라?”

“꼭 먹어봐야 된장인지 X인지 아니?”

“하는 짓 좀 봐, 꼭 미친년 널뛰듯 하네”

“소나기 올 때는 잠시 피해 있어야 옷 젖지 않아”

어머니가 자주 쓰시던 말이다. 많이 들었던,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말들이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 듣고서도 귓가로 흘려버려 지 않아 그나마 이 정도 인간이 됐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봐도 현명하게 세상 살아가려면 유식한 척, 잘난 척하느니보다는 역시 상식선에서 사는 게 옳다 하겠다. 공연히 법전을 들먹이거나 딴 나라 예를 들먹이다가 “제 무덤 제가 파는 꼴”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늙으면 제 얘기를 많이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결국은 남의 얘기 들으며 살게 된다. 불과 몇 년 전 70대까지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가 당당히 있었다. 마감 시간 안에 보내야 할 원고가 늘 기다리고 있었기에 시간을 쪼개가며 살았다. 그랬기에 아침에 깨면서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멍하니 누어있을 적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꼭 해야 할 일이 없어서다. 그렇다고 오늘 하루 마음대로 쉴 수 있어 좋다는 생각도 안 든다. 뭔가 해야 마음도 몸도 편한데 막상 할 일이 없으니 마음만 무거워진다. 마치 화초에 때맞게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다가 죽듯이 내가 지금 그 짝이 돼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짓누르기도 한다.

머릿속이 하얘지게 괴롭히기도 하는 글쓰기지만 그래도 쓸 글이 있다는 건 행복한 삶이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때 없이 여기저기 아프기 일쑤다. 병원에 가 봐야 소용없다. 동네 주치의라고 해야 할 의사가 아픈 얘길 듣고는 하는 말이 “조금만 더 견뎌 보세요”이다. 이젠 그 정도 아픈 건 그러려니 생각하고 살라는 표정이다.

그래도 미적거리고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한 나이가 됐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하는 표정을 짓는다. 더 할 말이 없다. 구부정하게 일어나 터벅터벅 나올 수밖에 없다. 나오면서 중얼거린다. (100세 시대라고 떠든 지가 언제인데 이제 80줄 노인이라고 웬만큼 아픈 건 참고 살라니...)

가을 하늘은 참 아름답다. 황홀한 하늘빛에 취한다. 흘러가는 구름 조각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한 아름 가슴에 담고 싶다. 가을은 정녕 한 해를 마감하는 준비의 계절이건만 다 늦게 굴러가는 낙엽조차 아름답다. 온통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다. 그런 세상을 깜박 잊고 너무 섭섭해 하며 살았나 보다. 이젠 조용히 아름다움에 취하며 살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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