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일 칼럼] 이건희 회장을 추모하며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10/27 [16:01]

[림일 칼럼] 이건희 회장을 추모하며

통일신문 | 입력 : 2020/10/27 [16:01]

내 고향 평양에서 198010월 노동당제6차대회 즈음하여 소나무흑백TV목란칼라TV가 수령의 선물로 일부 가정에 생겨났습니다. 일본의 친북·좌익 단체에서 들여온 이 두 종류의 TV뒷면에는 ‘MADE IN JAPAN’ 글이 선명하게 있지요.

이 시기부터 평양에는 미국 달러, 일본 엔, 중국 위안 등을 전문 취급하는 외화상점이 우후죽순마냥 생겼는데 그 안의 상품 30%이상이 일본제품입니다. 당시 평양시내 도로에 달리는 승용차 절반 가까이가 닛산’ ‘도요다등 일본제이었습니다.

199611, 평양에서 쿠웨이트로 가던 중 베이징국제공항에서 영문자 ‘SAMSUNG’ 대형광고판을 보았죠. ‘SAMSUNG’ 상표를 가진 중국회사인가? 했는데 영문발음 그대로 우리말 삼성은 무척 의아했어요. 그만큼 북한주민은 외부세계를 모르지요.

쿠웨이트 건설회사 외국인숙소에서 ‘SAMSUNG’ 브랜드 TV를 보았습니다. TV의 뒷면에 새겨진 ‘MADE IN KOREA’라는 영문자를 보며 또 놀랐지요. 이때야 비로써 영문자 ‘KOREA’남조선’(한국)임을 알았습니다. 참고로 북한은 D.P.R.K 하루 14시간 살인적 노예노동에 환멸을 느끼고 평양에 등을 돌려 19973월 쿠웨이트 한국대사관을 찾아 망명요청을 하였죠. UNHCR(유엔난민기구)을 방문해 망명사유를 밝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서울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산업현장 견학차 찾은 삼성전자 수원공장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통해 삼성을 알았습니다. 삼성그룹은 19383월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대구에서 자본금 3만원으로 세운 삼성상회에서 지역특산품인 능금과 동해건어물 등을 해외로 수출했네요.

19691월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전자공업을 설립하여 주로 일본의 전자제품기업과 협력, 부품생산 등을 하였지요. 이후 197412월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 1992D램 반도체가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세계1위를 기록하였죠. 기적입니다.

삼성그룹은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꿔보자!”는 이건희 회장의 1993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끊임없는 노력과 혁신을 창조해 평판TV(2006), 스마트폰(2011)1위 자리에 올랐고 현재 세계1위 제품은 20개에 달하죠. 대단합니다.

세계 최고의 삼성전자가 있기에 우리 국민들이 해외서 어깨를 쭉 펴고 나는 한국인이다!’고 당당히 말합니다. 저 또한 국제행사 차 외국을 방문하면서 북한주민이면 상상도 못할 대한민국 국민의 영예감을 한껏 느낍니다. ‘SAMSUNG’ 덕분에요.

202010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78세의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지난 26년간 삼성그룹을 이끌면서 세계1위 삼성전자를 만든 훌륭한 기업인이고 변방에 있던 대한민국에 세계1등 브랜드 ‘MADE IN KOREA’를 선사한 멋진 분이시죠.

40년 전 내 고향 평양에서 소나무’ ‘목란이란 조선글(한글) 상표의 일본TV를 선물로 받고 김일성 수령에게 고마워했던 인민들이 오늘날 일본도 부러워하는 세계1TV ‘SAMSUNG’이 바로 남조선(대한민국) 제품임을 알면 얼마나 감동할까요.

고 이건희 회장님을 굳이 북한식으로 존칭하자면 인민의 충복이 아닐까 합니다. 온갖 시련과 난관에도 굴함 없이 백절불굴의 강인한 기업정신으로 오로지 하늘같은 인민의 행복을 위해 낮이나 밤이나 산업현장을 뛰고 또 뛴 충실한 복무자입니다.

통일은 아니라도 남북경협이 잘되어 북녘 2천만 인민들 가정에 ‘SAMSUNG’ 가전제품이 놓이고 그들 손에 ‘SAMSUNG’ 스마트폰이 들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인민의 충복이라 생각하는 이건희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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