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대동강 비류강과 내 고향 이야기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10/21 [16:52]

[여적] 대동강 비류강과 내 고향 이야기

통일신문 | 입력 : 2020/10/21 [16:52]

<향강 張貞文 소설가·철학박사>

평안남도 成川군 출신으로는 내가 처음 북한의 고향을 찾아갔다고 생각한다. 고향의 혈육들과 편지를 주고받기는 1972년 여름부터였고 첫 여행을 떠난 때는 19777월이었다. 평안남도의 생명수이고 자랑스러운 풍광인 대동강과 비류강, 그리고 내 고향 마을인 소리열에 대한 추억이다.

대동강은 한반도의 여러 다른 강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대동강은 남강의 일부 상류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 발원지나 중류, 하류와 하구까지가 다 평안남도의 경내에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鴨綠江, 豆滿江, 漢江, 洛東江, 錦江들은 타국과 국경을 이루는 강이거나 적어도 두 개 도() 이상을 통과하는 강들이다. 대동강은 평안남도의 중심부를 구불구불 흘러내려 도민의 생명수가 되고 아름다운 景色이 된다. 뿐만 아니라 평안남도의 이름들이 이 대동강을 중심으로 이름 붙여졌다는 것도 뜻이 있다.

나는 대동강의 동북지류인 비류강 강변의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서쪽의 큰 강인 순천강변의 고을인 순천에서 지냈다. 南江은 내가 북한 방문기간 중 금강산으로 관광여행을 갈 때 차로 그 강변을 달리면서 보았다.

우리 조국의 삼천리 錦繡江山은 그 어느 하나도 秀麗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대동강과 그 지류들은 더 山紫水明하다. 나는 이 대동강의 지류들 중에서도 더 아름다운 비류강과 고향마을을 그려본다. 마을 이름은 松江里 소리열이다.

나의 고향마을 소리열名勝古都 成川고을에서 20리 하류의 강변마을이다. 마을의 동녘 강안에는 누에베루라는 巨山巨峰이 좌우로 날개를 펴고 우람하게 솟아있다. 그 상류 쪽은 높은 절벽과 가파른 암벽의 굴곡들이고 그 밑의 푸른 물은 깊다. 그 한군데 후미진 암벽에는 의 흔적이 붙어있는 용굴(龍窟)深淵 위에 반원으로 열려있다. 그 절벽 아래쪽의 강안에는 巨人壯士가 들어 옮겨놨다는 넓적바우가 반은 물속에 잠긴 채 누워있다.

그 강안 위쪽으로 거산 중턱에는 그 생긴 모양새를 따라 이름 붙여진 감투바우’, ‘삼티굴등이 있고 장마철이면 폭포가 떨어지는 낙수벽도 쳐다보인다. 하지만 거봉 누에베루의 하류 쪽 강안은 완만한 경사 밑에 버들강둑이 되고 더 아래로는 東西로 신작로를 연결하는 나루터, 그리고 다시 나직한 버들강둑으로 이어지다가 넓은 잔디들판을 편다. 강물은 휘어져 여울물로 흘러내린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 강을 앞강혹은 큰강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 앞강을 그려보며 그 옛날을 회상한다. 어린 시절 봄이 오면 그 버들강둑에서 물오른 버들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었지. 성천농업하교 시절에는 그 버들강둑 앞으로 봄물에 매생이’(나룻배의 평남 사투리)를 띄워 뱃놀이 즐겼다.

그 시절 어느 날인가는 길 가던 평양서문고녀 여학생을 나룻배에 태워 뱃놀이를 시켜주었는데 그 예쁜 여학생은 강안의 경치를 보며 참말 절경이에요.”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또 여름철의 향강은 얼마나 시원하고 즐거웠던가.

 

앞강을 그려보며 그 옛날을 회상

어린시절 봄이오면 버들강둑에서

피리 만들어 불어

 

한더위 그 무더운 계절에는 우리 동네 벌거숭이 아이들이 온 종일 물에서 물장난을 치며 놀았지. 그럴 때면 강둑 위의 뽕나무 밭에서는 찌르레기(매미의 일종, 평남도 사투리), 쓰르라미, 참매미들이 요란스레 울어댔고 강변 잔디 벌판에서는 암소들의 울음이 한가롭게 들려왔다.

우리 마을 소리열은 그 뽕밭둔덕에서 안쪽으로 저만큼 들어가 앉은 아늑한 청석지붕의 큰 마을이었다. 마을의 동쪽으로는 강안 누에베루의 높은 봉우리가 솟아있고 그 산등허리가 누에의 허리처럼 느슨하게 마을 옆과 뒤쪽으로 휘어져 들어온다. 그 산자락 뒷동산은 두무사니계곡이 되고 계곡 건너의 서쪽 산줄기와 만나 매봉’ ‘두릉봉’, ‘눌고개언덕, 앞남산 굴곡으로 이어져 넓어지며 마을을 품에 안고 강벌 서편으로 나온다.

오늘날 대동강은 휴전선 이남에서 많은 대동강이라는 노래로 가끔 가요무대에 오른다. 실향민 이산가족들, 특별히 평안남도 출신의 이산가족들은 향강 대동강을 생각하며 눈물과 한숨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대동강은 단군조선, 낙랑문화, 고구려의 古都로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와 전설의 강이다. 그 자연의 경치도 아름답지만 또 그만큼 이 맺혀 흐르는 강이기도 하다.

그것은 평안남도의 수심가로도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李朝 오백 년 간에 우리 서북인들은 남도 양반들의 천대를 받아 설움과 한 많은 세월을 살아야 했다. 6.25 동란 중에는 대동강의 아들딸들이 더 많이 죽었고 또 남쪽으로 대거 피난을 내려왔다. 그래서 대동강은 슬프고 외로운 강이 되었다. 물론 그 지류들, 동강, 서강, 남강을 다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대동강은 지금도 흐른다. 그 동북지류 비류강도 흐른다. 비류국의 古都, 成川山水景槪와 역사적 古蹟들은 다 무너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향강 비류강은 흐른다. 유순하고 잔잔한 물로, 맑고 아름다운 여울물로, 그리고는 유유히 힘 있게 흘러내린다.

그러면서 전쟁 때 떠나간 수많은 대동강의 아들딸들이 어서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비록 떠나간 그 젊은 아들들이 생존해 있다면 지금은 백발의 노구들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꼭 대동강으로 찾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대동강 비류강은 말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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