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주교포가 북 주민들 생활은 없고 생존뿐이라고 혀를 찼다”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5] 주민에게도 웃음이 있고 정과 눈물이 존재했다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10/21 [16:34]

“한 미주교포가 북 주민들 생활은 없고 생존뿐이라고 혀를 찼다”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5] 주민에게도 웃음이 있고 정과 눈물이 존재했다

통일신문 | 입력 : 2020/10/21 [16:34]

안내원비용 얘길 잠깐 하자. 어느 안내원이든 안내 비는 따로 없다. 북미교포 경우 이산가족경우에 동행안내자에게 팁을 준다. 정해진 값은 없지만 보통 미화1백 달러미만 비공식 안내수수료다.

팁 관련 생활방식에 익숙한 북미교포들에겐 자연스런 행위다. 다른 경우(관광이나, 비즈니스 등)는 따로 돈을 주지 않는다. 단지 개인방북 경우 체류기간 내내 함께한 안내원과 운전기사에게 작별할 때 얼마라도 인사로 주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해외동포위원회(사업국)명칭도 자주 바뀐다. 부에서 국으로, 처로 달라져 헷갈릴 때가 있다. 사실 방북자로선 상관없는 일이다. 안내원들은 유럽동포, 재중동포, 재일교포(9), 재미동포(5-6)담당 등으로 소속이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서방세계조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본인부서이외 타부서 관련해서는 바로 옆 근무라도 전혀 내용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않는다. 오직 수직관계 구조다.

외국 방문객을 위한 화폐통용도 30여년 계속 바뀌어져 왔다. 방북초기 1980년대에는 해외교포가 쓰는 돈은 달러(미화)였다. 수년 뒤 중국 돈도 병행해 사용하더니, 한동안 유로화가 교환기준이 됐다.

현재는 다시 달러(미화)가 대세를 이루고, 중국 돈도 쓴다. 유로화는 지금 거의 사라져 버렸다. 초기상태로 되돌아온 셈이다. 그러나 어느 상점, 백화점이든 모든 상품가격은 북한 돈으로 매겨져 있다. 장소에 따라 북한 돈(원화) 대신 달러로 계산하기도 한다.

수년전부터는 해외방북자에게 현금카드(플라스틱 첨부)를 발부해 사용케 하고 있다. 일정금액을 미리 입금시킨 뒤 발급받은 카드로 사용 때마다 결제한다. 신용(크레딧)카드가 아니니 입금액을 초과해 사용 못한다. 북미경우의 현금카드(Debit 카드)와 같다. 북 주민들도 같은 현금카드를 사용한다.

상품가격 하나를 예를 들자. 현재 미화 1달러가 북한 돈 8천 원 정도다. 상점에서 판매하는 소형선풍기(개인용)가 미화계산으로 5달러, 해외방북자 가격과 달리 북주민은 2중 가격구조로 된 듯싶다. 평양 등지 대도시에는 장마당(일종의 벼룩시장)이 있는데 각종 물품이 다 있다. 해외교포 출입도 가능하다.

평양의 경우 여러 구역 장마당가운데 통일거리 장마당이 가장 크고 늘 이용자가 많다. 가격이 상점보다는 좀 낮다. 특히 과일과 남새(채소)종류가 많고 신선해 인기가 높았다. 아마 지금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많은 변화와 난관이 있을 것이다. 또 전에는 정부 기업소에서 명절 때 고기, 기름, 맛내기(화학조미료)등을 무료공급해 주기도 했다. 금년 추석 때는 코로나19 영향으로 꽤 타격이 컸으리라.

 

북한에도 빈부차이가 무척 컸다

물질만이 꼭 만능은 아닐 것이다

근본적 문제는 국민을 꼼짝 못하게

옭아 맨 자유 없는 정치형태 아닐까

 

북한환경은 무척 낙후돼 있다. 특히 지방(시골)주거지는 한국보다 수십 년 뒤떨어져 보인다. 살풍경이다. 묘향산관광 중 차창 밖을 응시하던 옆자리 미주교포가 말없이 눈가를 닦았다.

왜 그러세요?”

,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돼서요. 하나님에 감사하는 마음이네요.”

언뜻 보기엔 피폐된 환경 속의 북 주민들에겐 무슨 낙이 있을까 싶었다. 한 미주교포는 그들에겐 생활은 없고 오직 생존뿐이라고 혀를 찼다. 허지만 북 일반주민에도 웃음이 있었고 정과 눈물이 존재했다. 사람 사는 세계는 어디든 비슷해 보였다. 북에도 빈부차이가 무척 컸다. 물질만이 꼭 만능은 아닐 것이다. 근본적 문제는 국민을 꼼짝 못하게 옭아 맨 자유 없는 정치형태가 아닐까.

황해북도 정방산을 방문할 때였다. 정방산은 유명사찰인 성불사가 있다. 이은상 작곡 성불사의 밤노래가사가 절로 떠올랐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절 입구 건너편에 주민 몇 사람이 보였다. 한 북한여성이 깔깔대며 큰 웃음을 터트렸다. 평양에선 가끔 웃음소리를 듣지만 시골에서 듣는 요란한 웃음소리는 내 귓가에 한참 머물렀다.

시골에도 그런 웃음을 짓는 주민이 있다니. 행복한가. 또 원산에서 금강산을 가다 중간지역인 동해바다부근 시중호‘(천연기념물 호수)에서 쉴 때다. 얼마간 북 강원도에 있었다는 운전기사얘기다. 동해안 남쪽에서 배가 잘못 표류돼 북으로 온 한국인어부 얘길 들려줬다.

그와 함께 어디를 갔다가 좀 늦었는데,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하는 겁니다. 아니 자기 집이 남쪽이지, 여기가 자기 집입니까하며 눈이 벌겋게 충혈 되는 것이다. 남쪽 그 어부 집에서 그를 얼마나 기다리겠는가를 하면서 눈물을 닦았다.

  • 도배방지 이미지

흥겨운 대동강 맥주 선술집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