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재소자처(在所自處)라고 했던가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09/23 [15:05]

[역사의 현장] 재소자처(在所自處)라고 했던가

통일신문 | 입력 : 2020/09/23 [15:05]

 <이중희 포천문화원 부원장>

옛 역사를 보면 전국시대 진()나라 재상 이사(李斯)를 만나게 된다. ()나라에서 자그마한 군()의 하급관리로 일하면서 세월만 축내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쥐 두 마리를 유심히 보면서 삶의 원리를 깨닫게 된다.

사기 이사열전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이사가 살펴보니, 뒷간에 있으면서 더러운 것만 먹는 쥐는 사람이나 개가 나타나면 깜짝 놀라 도망쳤다. 그러나 곡식 창고 안에 있는 쥐는 가득 쌓인 깨끗한 곡식을 먹으니 사람이나 개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되자 이사는 크게 한탄한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의 처해 있는 곳에 달렸을 뿐이다. , 사람이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려 있다는 재소자처(在所自處)라는 말을 남기게 되었다.

이사의 탄식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의 차이에 따라 어떤 사람은 현자(賢者)가 되고 군자(君子)도 되는데, 어떤 사람은 하류 인생이 되어 우민(愚民)과 소인(小人)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깨달은 이사는 출세를 위해 모험을 실천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진시황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공을 세워 객경(客卿)벼슬에 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의 시기, 모함, 견제로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물러나야 할 처지에 몰린 그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유명한 인재 개방론을 들고 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는 과욕으로 인해 권세를 유지하려고 진시황이 죽자 그 유서를 위조하는데 가담하는 등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여 주며 나라를 망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만했다. 그래서 역사에는 국가에 없어야 할 나라를 망친 간신의 표본으로 남게 되었다.

전국시대 진()나라 재상 이사(李斯)22년 동안 진시황의 2인자로서 진시황을 보좌해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군현제도를 실시하는 등 정치, 경제, 사상,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일대 개혁을 단행하고 시스템을 완성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시황제가 죽은 후 환관 조고(趙高)와 공모, 막내아들 호해(胡亥)2세 황제로 옹립하고 시황제의 장자 부소(扶蘇)와 장군 몽염(蒙恬)을 자살하게 했다.

그렇게 악행을 한 그도 얼마 후 조고의 참소()로 투옥돼 셴양(咸陽)의 시장터에서 참혹하게 처형됐다.

이런 이유로 그가 남긴 업적은 계승됐지만 나라를 망친 간신의 표본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이 나라 정치인들이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역사가 아닌가. 국민의 눈에는 나라를 망치는 간신 이사가 많아 보이니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지금 걱정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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