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사역자들, 통일되면 선참으로 북한교회 재건에 앞장설 것”

[인터뷰] 탈북사역자모임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이빌립 회장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08/20 [17:46]

“탈북민 사역자들, 통일되면 선참으로 북한교회 재건에 앞장설 것”

[인터뷰] 탈북사역자모임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이빌립 회장

통일신문 | 입력 : 2020/08/20 [17:46]

열방샘교회는 올해로 창립 16주년을 맞는다. 탈북민 목회자가 개척해서 10년을 넘긴 교회가 많지 않다.

처음 11명의 탈북성도로 시작한 열방샘교회는 현재 출석 성도가 140명이다. 전체 성도의 60%가 탈북민인데 여성들이 많다. 탈북민과 남한사람이 한 공간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통일사역을 위한 연습이라고 이빌립 목사는 말한다.

3만 탈북민사회에는 개신교에만 목사, 전도사, 신학생 등 탈북사역자가 300명가량 있다. 전국에 탈북민 목사가 개척한 신생교회는 약 30~35개 정도로 해마다 한국교회와 적극 협력하여 예배, 기도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민주주의사회 장점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향후 통일한국을 맞이하려면 종교분야의 복음적인 선교사역도 분명 준비해야 함은 틀림없다. 서울 구로구에서 탈북민 목사인 이빌립 북한기독교총연합회장을 만났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

북한에 남겨진 여러 사람들의 신변안위를 고려하여 자세한 가족이력 및 경력은 다소 밝히기 어렵다는 것을 말씀드린다. 19733월 함경도에서 태어났다. 1992년 전문학교를 나오고 철도역에서 일을 하였다.

19981월 특정장소에서 인민군보위사령부 소속 관계자(군사계급, 중좌)를 만났다. 현역군인 보위원(정보장교)이다. 그가 나에게 당과 조국을 위해 위험하지만 영예로운 일을 함께 해보자며 악수를 청했다.

그것이 대체 무슨 일인가.

중국에서 가짜 탈북자 행세를 하며 현지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 임무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대북 정보기관 특히 국군기무사 소속 라인을 찾는 것이다. 북한의 보위사령부가 무력부 소속이니 그 대칭기관은 남한 국방부 소속 기무사령부이다. 두 기관이 서로를 상대로 해외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한다.

언제 중국으로 나왔는가.

19983월 중순이다. 참고로 비밀정보원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안전한 통로는 따로 있다. 용정을 거쳐 길림성 지역에 거주했다. 다소 친분을 쌓은 조선족의 소개로 한국에서 나온 사업가 최만수(가명, 37)를 알게 되었다.

그는 북한군 경보부대 상위(중위와 대위 중간계급) 출신으로 1992년 탈북, 중국·홍콩을 경유하여 남한에 입국한 자다. 이후 한국정보기관 요원으로 중국에서 탈북자 포섭공작임무(탈북자에게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를 수행했다.

최만수 씨가 어떤 임무를 주던가.

북한에 들어가 주민용 노동당강연제강’, ‘특정기관 생활규칙’, ‘주민들의 사상동향등을 알아오라고 했다. 전략적으로 가짜 탈북자신분안전을 위해 그 임무를 수행했다. 물론 본부(보위사령부)에 최만수의 정체도 상세히 보고했다. 이후 나의 중국에서 기무사라인 찾기안기부라인 접촉임무로 바뀌었다.

 

중국에서 탈북자 행세 하며 특수임무수행

한국 정보기관 국군기무사 소속라인 찾는 것

 

조선족 소개로 한국서 나온 최만수 소개받아

상위출신으로 92년 탈북, 중국·홍콩을 경유

남한에 입국이후 한국정보기관의 요원으로

중국에서 탈북자에게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

 

심경변화(전향)를 느낀 동기는 뭔가?

중국에서 크게 놀란 것은 표현의 자유였다. 중국인들은 사석에서 술을 먹으면 강택민 주석을 대놓고 욕했다. 같은 공산권국가인 중국이고 북한으로 치면 노동당이고 수령인데, 비판한 주민이 아무렇지 않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시기였다. 북한-중국을 수시로 드나들며 인민이 주인인 나라(북한)에서 인민이 굶어죽는다? 이건 정말 아니지 않는가?” 하는 자괴감이 크게 들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최만수 씨를 통해 몇 가지 물품을 접했다. 그것은 1960년대 초반 북한군 부총참모장(군사계급, 상장)을 하다가 김일성의 숙청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한 박OO가 쓴 자서전을 보며 북한에서 배운 역사가 날조된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1987년 대한항공 KAL기 폭파범 김현희 씨가 쓴 책(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과 북한 강성산 총리 사위 강명도 씨가 쓴 책(평양은 망명을 꿈꾼다), 그의 서울기자회견 녹화테이프를 보면서 북한정권의 기만과 위선을 깨달았다.

한국으로 망명할 생각은 안 했는가?

전혀 안했다. 남한에 가면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알았다. 황장엽 조선노동당 비서가 중국을 통해 서울로 갔을 때(19974) 북한에서 난리였다. 그 가문의 8촌까지 대흥지역 광산마을에 강제 경리시켰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만약 내가 의도적 결심에 따라 중국에서 몰래 행방불명이 되면 북한에서 주요기관의 간부로 있는 가족 친인척 일부 사람들의 직무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니 남북이 통일이 되는 날까지 넓은 중국 땅 어디에서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 후 어떤 방법과 행동을 취하였나?

19991월 연길에서 최만수 씨를 만나 내 정체를 실토했고 중국호구와 신분증을 요구했다. 이후 그는 나를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는지 종적을 감췄다. 은신하고 싶었다. 여러 사람들의 안내로 찾아간 곳이 길림성 매화구시에 소재한 한 교회였다. 조선족교회인데 성도수가 약 80명가량 되었고 일단 마음이 편했다. 내가 여기서 성경책을 보는 가운데 성령체험을 한 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게 되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해준다면.

내가 하나님을 애써 만났던 그 교회에는 담임목사나 전도사가 없었고 책임집사(안수집사)가 예배인도와 설교를 하였다. 거기서 5개월 뒤 기도응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분명 나를 버리지 않았음을 예감하고 확신했으니 말이다.

그 후 한국선교사를 만났고 그와 14개월간 중국의 여러 지역을 은신해 다니면서 신학공부를 심층적으로 하였다. ‘선교훈련증서’(교회학교 교사자격증)를 취득하고 본격적인 전도활동을 하였다. 대상은 탈북자와 조선족이었다.

북송 경험이 있는 줄 안다.

20018, 중국 천진에서 6명의 탈북자와 성경공부를 하던 중 공안에 단속되어 단동-신의주를 거쳐 북송되었다. 그때 함께 북송된 탈북민은 대략 70명이었다. 평북보위부 감옥에서 일주일간 집중적으로 조사를 받았는데 내가 중국에서 교회생활 한 것만은 절대 불지 않았다. 안 그랬으면 나는 저승으로 갔을 것이다.

신분은 전혀 탈로나지 않았는가?

체포 순간부터 중국 내 행적을 감추고 보위부조사를 잘 넘기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보위부 취조(신원조회) 때 집안 내력까지 잘 아는 내 친구 형의 이름과 친척들이 사는 지역을 말했는데 그냥 통과되었다. 하나님 은혜다.

먼 친척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겨우 출소했다. 그때야 비로써 똑같은 사회주의 나라인 중국과 조선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른 세상이구나. 지옥의 조선 땅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탈북했다. 20022월이다.

 

20018, 중국 천진에서 6명의 탈북자와

성경공부 하던 중 공안에 단속돼 단동-신의주

거쳐 북송함께 북송된 탈북민은 대략 70

평북보위부 감옥에서 일주일간 집중 조사받아

중국에서 교회생활 한 것만은 절대 불지 않아

 

언제 한국으로 입국했는가?

정작 중국에서 탈북자 신분이 되어보니 그때는 한국으로 막 가고 싶어졌다. 악인도 들어 쓰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꼭 한국에 가서 신학공부를 열심히 해서 선교사가 되어 조국통일사역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20027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신학공부는 언제 어디서 하였나?

북한에서 다닌 전문학교(전문대) 학력이 인정되어 20032월 총신대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2007년에 졸업했다. 이후 3년간 더 공부한 총신대학교 대학원은 2011년에 졸업했다. 201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현재 담임하고 있는 열방샘교회20049월 전도사 시절에 개척한 것이다.

열방샘교회를 소개해 달라.

서울시 구로구에 소재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열방샘교회는 올해로 창립 16주년을 맞는다. 탈북민 목회자가 어려운 환경 속에 개척해서 10년을 넘긴 교회가 많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처음 11명의 탈북성도로 시작한 열방샘교회는 현재 출석 성도가 140명으로 늘었다. 전체 성도의 60%가 탈북민인데 여성들이 많다. 탈북민과 남한사람이 한 공간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통일사역을 위한 연습이라고 본다.

탈북민 성도들의 특성이 있다면.

탈북여성들은 북한·중국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보통 4~5년 지나야 치유한다. 교회를 다니는 탈북민이 비신자보다 조금 더 빠르다. 언젠가 남북하나재단에서 탈북민을 상대로 정착유형조사를 했다. 그에 따르면 남한에 잘 정착한 유형은 북한과 남한에서 전문대 이상의 학력자, 기혼자, 신앙인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북한기독교총연합회는 어떤 단체인가?

지난 2006탈북민사역자연합회로 설립되었고 2011년 사단법인 북한기독교총연합회로 개칭되었다. 8천만 우리 민족과 열방의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하며 분단 70여년을 맞은 이 민족의 아픔을 끝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룩하실 회복을 위한 영적인 시간을 준비하기 위한 탈북민 사역자들의 모임이다.

 

탈북여성들 북한·중국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

보통 4~5년 지나야 치유남한에 잘 정착한

유형은 북한과 남한에서 전문대 이상 학력자

기혼자와 신앙인 등 순으로 조사됐다고 밝혀

 

설립 목적과 비전은 무엇인가?

북한에서 죽어가는 25백만의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하여 그 곳에 무너진 하나님의 교회를 재건하는 것과 함께 열방을 회복시킬 주님의 거룩한 마지막 회복사명을 감당할 통일한국교회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비전성취를 위해 한국교회와 전 세계교회와 협력하여 북한선교 정보공유 및 탈북민 선교, 목회자양성 및 선교전략개발 등을 상호 협력한다. 북한선교를 위한 훈련시스템을 구축하고 미래지향적인 북한교회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동안 어떤 행사를 하였나.

지난 20158우리를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사명자(탈북민 목회자 및 신학대학생) 영어말하기 캠프를 개최하였다. 10월에는 경기도 성남의 할렐루야교회에서 1회 북한과 통일을 위한 원코리아 연합기도회를 가졌다.

2019년 초 동계수련회를 시작으로 신학교심방사역, 6월에는 9회 통일소망목회자·사모세미나를 강원도 속초서 진행했다. 올해 2월 탈북민 사역자가정 및 탈북민신학생 동계수련회 겸 정기총회를 경주켄싱턴 리조트서 개최했다.

 

북한기독교총연합회는 8천만 우리 민족과

민족의 아픔을 끝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영적시간 준비하는 사역자 모임

 

해외 선교 집회도 진행하던데.

북한기독교총연합회는 201510월 필리핀 마닐라한인연합교회에서 있은 마닐라 통일선교 컨퍼런스를 비롯하여 미국, 동남아, 유럽 등지에서 통일선교 부흥집회에 동참하였다. 또한 국내에서도 전국교회연합과 협동하여 통일 및 탈북민, 북한복음화를 주제로 매년 진행하는 전도부흥선교 집회에 함께 하고 있다.

최근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는데 소개를 부탁드린다.

올해 3, 재미교포 최 목사가 인터뷰에서 북한에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한 것에 대해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가졌다. 북한은 종교를 탄압하는 세계최악의 기독교 박해국가다. 그 자리서 종교미신에 빠지면 반역의 길을 걷는다는 제목의 북한당국이 만든 주민교양용 동영상을 언론에 최초로 공개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300명 탈북민 사역자(목사, 전도사, 신학생 등)의 인도로 많은 탈북민들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오기를 바란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한반도 통일의 문 열어주시면 선참으로 달려가 북한교회 재건을 위해 앞장설 탈북민 사역자들이다. 대부분의 탈북민 사역자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신학생들이 더욱 그렇다.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실 따뜻한 손길을 기다린다. 신앙을 갈망하는 북한동포를 위한, 통일을 위한 국민들의 사랑의 도움이 필요하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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