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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 거울을 보지 않는 남자
 
통일신문 기사입력  2020/03/26 [12:32]

<박신호 방송작가>

올봄은 너무나 스산하다. 인심 잃은 초상집보다 더 썰렁하다. 들녘에 핀 꽃들도 봐주는 이 없어 쓸쓸하다. 올봄 풍경은 전하는 사람이 없다. 첩첩이 발길을 막아서니 봄을 담을 마음의 여유도 없다. 세상에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19로 계절마저 잃었다. 큰 상흔을 남겨 놓고 봄은 그렇게 부끄럽게 가고 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봄을 좋아한다. 겨우 내내 답답하게 갇혀 있던 울안에서 훌훌 벗어나 어디에고 마음대로 떠날 수 있어서일 것이다. 해맑게 새로 신장개업한 대지와 하늘을 마음껏 가슴에 품을 수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기에 온 천지에 파릇파릇 수놓는 새싹들이 귀여워 발걸음도 사푼사푼 옮기게 된다. 봄은 시선을 멈추게 하고 추억의 앨범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봄에 홀로 나들이를 떠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논두렁 밭두렁으로 나물을 캐러 간 여인들도 점심때가 되면 손짓하지 않아도 모여 앉아 가지고 온 도시락들을 펴놓고는 젓가락이 입에 들어갈 때마다 맛있다고 서로 반찬 칭찬하기 바쁘다. 그중에 막내는 놓치지 않고 핸드폰에 부지런히 사진을 담는다. 무심하게 앉아있던 아낙네들은 얼른 흩어진 머리를 가다듬는다.       

 세월이 갈수록 사진 찍을 기회도 줄어들고 찍기도 싫어지나 보다. 단체 사진이라도 찍을 양이면 굳이 멀찍이 떨어져 구경이나 하기 일쑤다. 그러다가 핀잔을 받곤 마지못해 뒷전에 서기 일쑤고 그나마도 얼굴 반쪽밖에 보이지 않는다. 집안 여기저기 박혀있는 사진도 처치 곤란한데 그깟 단체 사진은 찍어 뭐하랴 싶기도 하다. 사진이란 두고두고 되새김질하며 보자는 것이며 누구에게 자랑삼아 보이려는 건데 다 늙게 한갓지게 사진이나 뒤척이며 볼 것이며 지나간 추억에 젖을 것인가. 

 어느 나른한 한낮, 이 구석 저 구석에 있던 사진들을 모으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이 사진들을 다 태워버려야 하는데 어떻게 태우지...?) 

 옆에서 아내가 독백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앉으며 정색을 한다. “분신 같은 사진을 왜 태워요?” 핀잔은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았다. 주말이면 오는 자식들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사진 얘기를 들먹인다. 눈치 빠른 자식들은 재빨리 엄마 편이 돼 맞장구를 친다. 대꾸 한마디 못하고 어디선가 본 글을 생각해 낸다. (낡은 사진이라도 시간 날 때마다 뒤적이며 보면 치매 예방에 좋다) 

 누구라 할 것 없이 화장실을 가면 으레 거울을 보게 된다. 그러나 나는 건성 본다. 굳이 주름살투성이의 늙은이 얼굴을 확인하고 싶지가 않아서다. 차라리 외면해 버리는 게 마음 편해서다.

 늘 보던 사람끼리는 늙어가는 걸 잘 느끼지 못한다. 하물며 자주 보는 거울로는 늙는 모습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발견하곤 놀란다. 그리고는 서글퍼하기도 하고 탄식하기도 한다. 또 어느 날은 더럭 겁을 낸다. 멀리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보여서다. 

 침침한 눈에도 거울에 비친 늙은이의 얼굴은 분명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아무리 내가 날 사랑해도 늙어진 내 모습까지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문전박대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점점 더 거울을 보지 않게 되고 사진마저 찍기 싫어진다. 점점 우주의 떠돌이별이 돼 가는 거다. 

 어느 시절에는 난다 긴다는 미남 배우도 부러워해 본 일이 없다. 아무리 분장을 하고 꾸미고 으스대도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았다. 한때 연극에도 출연해보고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얼굴을 내밀어봤기 때문이 아니다. 다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녕 봄은 왔건만 스산하다. 세월은 주저 없이 과거를 지우며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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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26 [12:32]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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